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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야당에 감사" 원고에 없던 '협치 애드리브'에 시큰둥하던 국힘, 퇴장 때 기립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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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야당에 감사" 원고에 없던 '협치 애드리브'에 시큰둥하던 국힘, 퇴장 때 기립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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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乙 자격" 취임식 이후 22일만에 국회 재방문
野 고심 끝 피켓 항의 대신 대통령 예우 다하기로
시정연설 내내 무반응 보이자, 李 야당에 적극 구애
대학 동문 권성동과 대화, 어깨 '툭' 치며 친근함 과시
당대표 후보 박찬대 정청래 손 포개 맞잡으며 '중립 악수'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여당의 뜨거운 환대와 야당의 절제된 예우 속에 대통령으로서 첫 시정연설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약 20분간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필요한 예산은 증액을 요청하라는 등 원고에 없던 애드리브로 적극 손을 내밀었다. 이 대통령의 '협치 구애'에 시정연설 내내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야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 퇴장 때는 기립해 호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 요구는 잊지 않고 전달했다.

이날 오전 9시40분 짙은 남색 정장에 파랑과 빨강이 섞인 넥타이 차림으로 국회를 찾은 이 대통령은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로 우원식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가 있는 접견장으로 이동해 인사를 나눴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지난 4일 취임식 이후 22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제가 이제 을(乙)이라 각별히 잘 부탁드린다"며 "의회의 견제와 감시도 적정하게 잘해주고,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2023년 10월 이곳에서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맞이한 적이 있다.

몸 낮춘 李 대통령 "제가 을(乙)이라 각별히 잘 부탁"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취임 후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티 타임을 갖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취임 후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티 타임을 갖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시정연설을 위해 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출입문부터 단상 앞까지 도열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문 앞이 자리인 박찬대 의원과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눴고 추미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날까지 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치른 김민석 후보자와도 악수를 나누며 이동했다.

90도로 고개 숙이며 시정연설을 시작한 이 대통령은 '경제'를 24번, '국민' 15번, '예산' 14번, '성장' 12번을 언급하며 추경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총 12차례 박수 호응을 보낸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당초 피켓 시위도 검토했으나, 대통령 첫 시정연설인 만큼 예우를 갖추자고 했다고 한다.

여야의 대비되는 모습에 이 대통령은 분위기를 전환하려 "국민의힘 여러분은 반응이 없으시냐고 말하면 쑥스러우니까…"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야당을 향한 협조 발언도 거듭 꺼내들었다. 이 대통령은 "야당 의원님들께서도 필요한 예산 항목이 있거나, 삭감에 주력하시겠지만, 추가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의견을 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하거나, 연설 마지막엔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께서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 고맙다"고 했다.

퇴장 때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석 쪽으로 이동하자, 연설 중 시큰둥했던 것과 다르게 국민의힘 의원들은 먼저 기립해, 이 대통령을 배웅하고 짧은 대화도 나누는 모습이었다. 처음에 강명구 의원과 박성민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고, 임종득·유용원 의원 등 일부는 이 대통령에게 귀엣말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불법 비상계엄 선포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 당권 경쟁 박찬대·정청래와 '중립 악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대학 동문인 권성동 의원과는 악수 후 짧은 대화를 나눈 뒤 활짝 웃으며 이 대통령이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권 의원과 나경원 의원 등은 "김민석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달라"는 말을 건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청래·박찬대 의원이 문 앞에 나란히 서 있자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가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손을 포개 맞잡으며 격려하기도 했다. 누구와 먼저 악수를 했느냐를 두고 불필요한 논란이 나오기 전에 이 대통령 스스로 '중립 악수'에 나선 것이다.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마무리된 시정연설이었지만 뒤끝 반응도 있었다. 이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언급한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박성훈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소수 야당을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한 것이 아니냐는 몇몇 의원들의 발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