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진,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발표
1976년부터 통용된 기존 계산 방식 오류
‘시속 40㎞ 질주’ 불가능했을 가능성 커져
1976년부터 통용된 기존 계산 방식 오류
‘시속 40㎞ 질주’ 불가능했을 가능성 커져
벨로키랍토르가 들판에 서 있는 상상도. 호주 퀸즐랜드대 제공 |
투구뿔닭 모습. 아프리카에 자생하며, 과학계는 공룡과 신체 구조가 유사한 것으로 평가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
공상과학(SF) 영화에서 오토바이만큼 빠르게 질주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공룡인 ‘벨로키랍토르’가 실제로는 사람보다 느렸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76년부터 과학계에 통용된 공룡 보행 속도 계산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대 연구진은 2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를 통해 백악기 후기인 약 7000만년 전 동아시아에 서식했던 벨로키랍토르의 이동 속도가 과학계의 종전 예상과는 달리 훨씬 느렸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벨로키랍토르 최고 속도는 학계의 기존 예상치(시속 40㎞)에 크게 못 미치는 시속 8.5㎞ 수준으로 계산됐다. 훈련받지 않은 보통 사람도 전력 질주하면 시속 20㎞를 어렵지 않게 넘긴다.
벨로키랍토르는 몸 길이가 1.5~2m, 몸무게는 15~20㎏인 육식 공룡이다.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시속 4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리기 능력 때문에 현대 과학계와 대중매체에서는 ‘포악하고 민첩한 사냥꾼’으로 묘사돼 왔다.
연구진이 벨로키랍토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빠른 달리기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근거는 현대에 사는 조류인 ‘투구뿔닭’의 특징이다.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칠면조와 비슷한 모습을 띤 투구뿔닭의 다리 구조와 보행 방식 등은 벨로키랍토르 같은 수각류 공룡(두 발로 선 채 이족 보행하는 공룡)과 닮았다. 이를 통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벨로키랍토르의 이동 속도를 가늠한 것이다.
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대 연구진이 촬영한 투구뿔닭의 발자국. 맨 위부터 아래로 갈수록 더 물렁물렁한 진흙 위에 찍힌 발자국이다. 리버풀 존 무어스대 제공 |
해당 공식은 다리 길이와 발자국 간격·길이 등을 종합해 보행 속도를 추정한다. 그런데 이 공식을 사용해 시속 1㎞로 걸었던 투구뿔닭 보행 속도를 계산해 봤더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공식을 통해 구한 시속이 최고 4.7㎞까지 나온 것이다. 5배 가까이 속도가 부풀려진 셈이다. 진흙이 질수록 실제보다 더 빨리 움직인 것처럼 계산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식 자체가 공룡이 단단하게 다져진 땅 위에서 움직인다는 전제로 고안됐기 때문이다. 물렁물렁한 진흙 위를 걸었던 공룡 발자국은 앞뒤로 늘어나면서 왜곡됐고, 이 때문에 실제로는 걸으면서 찍힌 발자국이 힘껏 달리다가 찍힌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모래처럼 거친 입자로 다져진 땅에서는 기존 계산법이 통할 가능성이 좀 더 크다”면서도 “멸종된 동물의 이동 속도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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