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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게임 들어간 서울 집값…이번엔 달라야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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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게임 들어간 서울 집값…이번엔 달라야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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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노현웅 | 경제산업부장

서울 아파트가 심상치 않다. 시작은 지난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오판에서부터였다. 강남권 잠실·삼성·대치·청담에 지정됐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고 재지정하기까지 불과 한달여 동안, 그간 묶였던 갭투자 수요 등이 몰리며 해당 구역 내 아파트 거래량이 3배 넘게 늘었다.

금리 인하 기조와 공급 부족이 마주한 대세 상승기 초입에 모처럼 열린 좁은 문틈으로 상투라도 잡겠다는 수요가 물밀듯 밀려왔다. 이 기간 외지인 거래와 신고가 거래가 동시에 증가하며, 투기성 가수요가 가격을 밀어올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책적 실책이 수요를 자극한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서울 아파트에 갑자기 불이 붙자 놀란 오세훈 시장은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재지정하며 수요를 억누르려 했지만, 시장은 정책 당국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4곳 자치구야말로 무리수를 둬서라도 수요를 억눌러야 할 급소라는 사실이 재확인되면서 추격 매수를 이어간 것이다.

여기에 7월 시행 예정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스트레스 금리 적용을 앞둔 막차 수요까지 더해지며 잠·삼·대·청에서 시작된 불길이 동심원의 지름을 넓히며 서서히 옮겨붙는 소용돌이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주 부동산원 가격 동향을 보면, 성동구는 0.76% 올라 12년2개월 만에, 용산구(0.71%)는 7년4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했다. 0.66% 오른 마포구는 역대 최대 상승률을 나타냈다. 그간 잠잠했던 노원·도봉·강북구 지역에서도 신고가가 잇따르고 있다.

시장이 당국보다 한 발짝 먼저 움직이며 정책 효과를 비웃듯 가격을 띄우는 형국인데, 이 같은 움직임을 가능케 한 것은 결국 한 가지 동인이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다.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매하기 힘들 것이라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의 두려움은 결국, 지금이라도 올라타야 남은 시세차익이라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도 이 같은 시장과 당국의 술래잡기를 경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부동산 시장의 특징은 지금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주택 시장 하강기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주택 공급을 줄였고,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빚내서 집 사라는 노골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펼쳤다. 여기에 통화정책마저 완화 기조로 돌아서면서 집권 초 2013년 2.75%였던 기준금리가 집권 말인 2017년엔 1.25%까지 떨어졌다. 막대한 유동성에 집값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할 무렵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셈이다.

그 이후는 모두 알고 있는 대로다. 문재인 정부는 무려 26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시장을 잠재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기간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각종 수요 대책이 나올 때마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거래량의 급감과 가격의 급등이라는 이례적인 거래 패턴이 반복됐다는 점(‘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전개와 평가’ 논문, 최한수 경북대 교수)이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유주택자는 매물을 잠그며 버티기에 나섰고, 견고한 수요층이 가격 상승 기대감에 갭투자 등 각종 레버리지를 총동원한 ‘패닉 바잉’에 나서며 가격을 밀어올렸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주택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투자상품의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데 실패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참여자들과의 심리 게임에 패한 셈이다. ‘똘똘한 한채’라는 나쁜 시그널이 서울 아파트의 수익률 기대를 담보하는 지지대 역할을 했다.

최근 서울 부동산의 숨 가쁜 오름세의 배경 가운데 ‘이재명 정부 출범 기대감’이 시장에선 주요하게 언급된다. 집값 상승에 대한 민주당 정부의 트라우마가 기대감으로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기간 부동산 관련 세제는 손대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투자수익률을 낮추는 가장 직접적인 정책 수단인 조세 카드를 포기하겠단 선언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한채 십수억원에 달하는 서울 아파트를, 거액을 조달할 수 있는 이들의 투자 놀이터로 내주어선 안 될 일이다.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꺾지 못하는 이상 어떤 수요 억제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그땐 소 잃고 외양간조차 못 고치는 집권세력이 될 수 있어서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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