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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강화 비법? 해답은 기술거래 생태계 육성"

머니투데이 김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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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강화 비법? 해답은 기술거래 생태계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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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원 한국기술거래사회 회장 인터뷰…"기술거래 생태계 발전 위한 제도 개선·예산 확대 절실 "

김호원 한국기술거래사회 회장/사진제공=한국기술거래사회

김호원 한국기술거래사회 회장/사진제공=한국기술거래사회


AI(인공지능)를 비롯해 양자 컴퓨팅, 우주, 바이오 등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 기술들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대에 기술의 R&D(연구개발)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연구개발한 기술의 상용화·사업화다. 아무리 좋은 기술, 앞서나가는 기술이라 하더라도 연구소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김호원 한국기술거래사회 회장이 기술거래 생태계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술거래 생태계 발전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 제도 개선과 예산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국장과 산업정책국장,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실장과 국정운영 2실장, 특허청장 등을 역임한 국가 R&D 정책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R&D 기획·투자, 잠재적 비교우위부터 살펴야

김 회장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져 수익을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 기획 단계부터 비즈니스·사업성 등을 깊이 고민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부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한창 코리아 R&D 패러독스(역설)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R&D 투자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임에도 불구하고 혁신 등의 성과는 그에 못 미쳤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니, 그간의 기술 투자는 AI든 바이오든 그럴듯해 보이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할지, 무엇을 할지 깊은 고민 없이 그냥 너도 나도 다 그걸 하겠다고 해 온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R&D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잠재적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즉 똑같이 투자하거나 심지어 남들보다 적게 투자해도 우리가 경쟁우위를 얻을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김 회장은 잠재적 비교우위를 지니는 기술을 찾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를 정교하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AI, 바이오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어떤 분야, 어떤 기술이 우리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지 더 꼼꼼히 들여다본 후 투자와 R&D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유망 분야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야는 미국도 하고 중국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까요? AI, 바이오 이렇게 크게 접근할 게 아니라 그중에서도 우리가 잘할 분야를 더 세분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이다 하면 그냥 '자동차' 이렇게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전기자동차, 그리고 그 안에 모터나 배터리 기술, 그리고 또 그 안에서 더 세분화된 기술들을 분류하고, 그중에서 우리가 세계에서 1~2등 할 경쟁력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특화해 기술 개발을 하면서 진입 장벽을 높여야 합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도)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은 특화하고 세분화된 부품·소재 분야에서 세계 1~2등을 하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정책과 투자의 방향에 있어 R&D 자체에 대한 비중이 크고 상용화·사업화 부분은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점도 김 회장이 생각하는 보완해야 할 것 중 하나다. R&D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투자를 받는 대학교수나 연구원 등 연구와 개발 주체들에게 상용화·사업화까지 다 해내길 바라게 되고, 이는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 후 이를 상용화해 마케팅을 하고 물건을 파는 것은 소비자와 시장을 이해해야 하는 경영학의 영역입니다. 물론 대학교수나 과학자, 연구원 중에서도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소수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정책의 대상이 아닙니다. 정책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것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1등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연구에만 집중하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고 마케팅하는 것은 별도로 잘하는 사람이 맡아줘야 합니다. 전 세계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도 기술을 알아보고 투자를 하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습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모든 것을 다 요구할 게 아니라 상용화와 마케팅을 지원할 사람, 금융을 지원하는 사람 등 시스템적으로 각 분야를 전문화하면서 기술거래 생태계를 키워야 합니다."


기술거래사 지위·권익 강화, 국가 경쟁력 키우는데 필수

이러한 기술의 상용화에 전문성을 지니는 게 기술거래사다. 기술거래사는 중요한 국가공인자격임에도 불구하고 변리사나 회계사처럼 법적으로 업무 독점 영역이 정의돼 있지 않아 제도상 권위나 지위가 낮다는 게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기술이전, 기술가치 평가 업무에 대한 법적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시장에서는 기술거래를 진행할 때 오히려 변리사, 감정평가사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처럼 기술거래사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민간 수요 부족으로 인한 공공 중심의 제한적 활동 △기술거래·사업화에 대한 시장가 미책정 등의 문제들이 기술거래 생태계 발전을 저해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 사업화 관련 예산은 전체 R&D 예산 대비 아주 미미한 수준입니다. 단적인 예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술을 사업화하는 정부과제에 대해 평가 위원들이 받는 비용은 몇십만 원에 그칩니다. 민간 기업에서 기술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정부과제는 7~8년 이상의 장기 과제도 많고 비교우위 확보 가능성, 사업성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데 열악한 처우로 인해 평가를 위한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가 힘듭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 사업화 예산이 확대돼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여러 분야에서 기존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을 살펴보고 보완하며 개선할 수 있는 적기로 여겨진다. 김 회장은 기술거래 생태계 발전도 새 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길 기대한다. 미비했던 제도가 보완되고 예산이 확대되며 기술거래사의 지위와 권익이 강화된다면,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개발한 뛰어난 기술들이 연구소 밖으로 나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가 경제 성장과 미래를 위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과 혁신입니다. 기존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통한 공공 분야에서의 기술 개발은 첨단성이나 유망성 위주로 추진됐으나, 이 기술에 대한 수요자인 기업은 기술이 가지고 있는 시장성이나 사업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특정 산업이나 기술이 장기적으로 잠재적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기술거래사의 역할은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일정 규모 이상의 R&D 과제, 중장기 프로젝트들은 기획 단계부터 사업성 평가를 수행해 기술사업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기술거래사의 전문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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