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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씹으면, 수능 점수가 올라간다는 가설과 그 유전자 [이환석의 알쓸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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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씹으면, 수능 점수가 올라간다는 가설과 그 유전자 [이환석의 알쓸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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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껌 씹기
저작 운동의 집중력 강화 효과
잇따라 확인되는 BDNF 유전자


그래픽=송정근

그래픽=송정근


싱가포르는 깨끗한 도시 환경으로 유명하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한 독특한 법들도 유명한데 그중엔 껌 금지법도 있다. 약 30년 전인 1992년부터 외국에서 껌을 수입하거나 판매하는 일이 전면 금지되었다. 공공장소에서 껌을 뱉는 행위에는 우리 돈 5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의 벌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주위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에도 분명히 효과가 있어 보이는데, 사실 껌 씹기에는 건강과 관련된 다른 흥미로운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스포츠 종목, 특히 미국 프로야구 감독들과 선수들의 경우 경기 중에 껌을 씹고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다소 불편한 느낌을 줄 수도 있긴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껌 씹기가 경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다수의 연구가 진행된 바 있는데, 많은 연구에서 집중력 향상 효과가 검증된 상태다.

물론 하필이면 꼭 껌을 씹어야만 하는가는 또 다른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가령 싱가포르 야구 선수들은 껌 대신 해바라기씨를 씹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무언가를 씹는 저작 운동은 집중력 향상과 단기 기억의 증진 그리고 단순 작업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 기저에 있는 원인으로 주목받는 유전자들 중 하나가 BDNF(뇌 유래 신경영양 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유전자이다. '뇌 유래 신경영양 인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BDNF는 주로 대뇌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긴 하지만, 근육에서도 만들어지며 뇌 인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픽=송정근

그래픽=송정근


최근 학계에서 크게 주목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근-뇌 축'(muscle-brain loop) 연구인데 근육이 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백질은 마이오카인이다. 마이오카인은 골격근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신호 물질로, 주로 운동 중 또는 운동 후에 생성되어 전신에 다양한 영향을 준다. 연구 초기에는 면역계의 사이토카인처럼 알려졌지만, 현재는 근육이 내분비 기관처럼 작용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고, 대표적 마이오카인으로는 IL-6, BDNF, 이리신, 그리고 마이오스타틴 등이 있다.

장을 구성하는 세포들과 대장 속 미생물들이 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 과정인 '장-뇌 축'(gut-brain axis)에서 장 세포들이 분비하는 호르몬들의 뇌 기능 관련 역할이 밝혀지고 있듯이 근육 세포들이 분비하는 마이오카인들의 뇌 기능 관련 역할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BDNF는 그 대표적 단백질 중 하나다.

운동 중 분비되는 BDNF는 뇌의 해마 부위에서 신경 세포의 성장과 시냅스 강화를 통해 기억력 및 집중력 개선에 작용하며 운동 후 기분 개선과 정신적 안정감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항스트레스 및 항우울 효과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마이오카인은 단순히 운동에 반응하는 물질을 넘어서 운동이 건강, 특히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분자 생리학적 근거로 주목받고 있다.


결국 무언가를 씹는다는 건 턱을 포함한 얼굴 근육의 운동을 통한 마이오카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뇌와 거리가 가까운 쪽에서 움직이는 근육들이므로 작은 운동일지라도 상대적으로 효과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 받을 때 자기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도 이런 저작 운동의 항스트레스 효과로 이해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는 '숨쉬기 운동은 매일 한다'는 표현도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을 내서 운동을 시작하는 일이 어렵다면, 숨쉬기 운동에 더해서 씹기 운동을 추가하는 것부터 도전하면 어떨까. 식사 시간에도 음식물을 좀 더 씹는 습관을 들이고, 식사 시간 외에도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씹어 보자. 운동이 육체적 건강 외에도 정신적 건강까지 지켜준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실제로 열심히 땀 흘려 운동하게 되는 날도 좀 더 빨리 오게 되지 않을까.

이환석 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