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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핸드폰에 ‘오빠♥’ 저장했다간...‘자기야’도 안 돼

이데일리 홍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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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핸드폰에 ‘오빠♥’ 저장했다간...‘자기야’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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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자기야 등 남한식 표현 차단"
"'오빠' 저장시 자동으로 '동지'로 바뀌어"
"하트(♥) 등 이모티콘 사용도 통제"
"5분 마다 자동 캡처, 당국 열람 가능"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한국 드라마와 K팝 유포자를 공개 총살하고 이모티콘 사용까지 통제하는 등 외부 문화 차단을 강화하고 있다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북한에서 밀반출된 스마트폰 내부. 남한식 말투가 자동 수정된다. (사진=BBC 영상 캡처)

북한에서 밀반출된 스마트폰 내부. 남한식 말투가 자동 수정된다. (사진=BBC 영상 캡처)


유엔인권사무소 서울사무소는 25일 서울 중구 글로벌센터에서 ‘피해자 및 증인이 바라보는 지난 10년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인권 상황’ 행사를 열고 탈북민의 이 같은 증언을 공개했다.

2023년 5월 일가족과 함께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탈북한 김일혁 씨는 “제가 알고 지내던 22세 남자애는 남한 드라마 3편과 K팝 노래 70여곡을 유포했다는 죄로 공개총살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석 달에 두 번꼴로 공개 총살이 있었으며 한 번에 12명씩 처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한국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실제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휴대전화를 검열하며 이모티콘 사용까지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여성 탈북민은 “2015년부터 휴대전화 검열이 본격화됐다”며 “나이 많은 사람을 ‘오빠’라고 저장하면 OO동지로 바꾸라 하고, 이름 뒤에 하트(♥) 이모티콘을 붙이는 것도 금지됐다”고 전했다.


여성 탈북민은 “과거에는 한국 드라마 시청이 적발돼도 300~400달러로 무마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금액이 크게 올랐다”며 “저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러다 나도 총살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 속에 살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스마트폰 자판 사진. 남한식 표현을 입력하면 북한식으로 자동 수정되고, 경고 메시지가 뜬다. (사진=BBC 영상 캡처)

북한의 스마트폰 자판 사진. 남한식 표현을 입력하면 북한식으로 자동 수정되고, 경고 메시지가 뜬다. (사진=BBC 영상 캡처)

앞서 지난달 31일 영국 BBC 방송은 북한제 스마트폰을 입수해 이와 같은 내용을 확인한 바 있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에서 밀반출한 스마트폰은 겉보기엔 일반 기기와 다를 바 없지만 ‘오빠’, ‘자기야’, ‘쪽팔려’, ‘화이팅’ 같은 한국 유행어를 차단했다.


실제 북한 스마트폰에 ‘오빠’라는 글자를 입력하자 자동으로 ‘동지’로 바뀌었다. 이어 ‘경고!: 친형제나 친척 간인 경우에만 쓸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또 ‘남한’을 입력하면 ‘괴뢰지역’이라는 글자로 변경됐다.

또한 BBC는 이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활동을 몰래 감시하기 위해 5분마다 자동으로 화면을 캡처하고, 이를 당국만 열람 가능한 비밀 폴더에 저장하는 기능이 내장돼 있다고 밝혔다.

BBC는 “주민들이 금지된 콘텐츠 등을 보거나 공유하는지 당국이 알아내려는 것”이라며 “북한 정권이 현재 얼마나 놀라운 수준으로 정보를 검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평양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평양 노동신문, 뉴스1)


코로나19 시기 북한의 식량난도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당시 병으로 죽은 사람보다 굶어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며 “식량과 공산품 가격이 폭등하고 강력 범죄가 성행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여성 탈북민은 “코로나 이전에는 장마당에서 꽃제비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후 부모를 잃고 거리에 나온 아이들이 급증했다”고 떠올렸다.

다른 탈북민은 “삶이 어려워지자 여성들 사이에서 출산 기피가 확산됐다. 그러자 2023년부터 이혼 시 1년 징역형에 처하는 법이 발표됐다”고 전했다. 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백서 2024’에 따르면 북한에서 여성이 이혼이나 임신 중단을 선택할 경우 노동단련대에 보내진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약 400명의 탈북민 면담 내용을 오는 9월 제60차 인권이사회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 후속 보고서로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