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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도 회수한 ‘불량 체온계’, 경찰은 왜 무혐의 처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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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도 회수한 ‘불량 체온계’, 경찰은 왜 무혐의 처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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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가 회수 조처까지 한 불량 체온계를 납품받았는데, 경찰이 이를 납품한 업체 대표를 상대로 낸 사기 고소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전기·전자제품 개발·판매업체를 운영하던 손아무개씨는 25일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2021년 1월 의료기기 제조·도매업을 하는 ㄱ씨와 체온계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비대면 체온계 수요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손씨는 그해 5월 ㄱ씨에게 비대면 체온계 7360대, 물품대금으로 1억8400만원을 지급했다. 국가인증을 받은 ㄴ체온계(피부 적외선 체온계) 제조사 총판이기도 한 ㄱ씨는 ㄴ체온계 메인 부품을 받아, 위탁업체를 통해 재가공해 손씨에게 납품했다.



손씨는 같은 해 8~9월 의료기기 판매업체 2곳에 체온계를 판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ㄱ씨로부터 공급받아 납품한 체온계가 모두 반품 처리됐다. 체온이 36.5도로 정상인데도, 고열 환자로 진단하는 심각한 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체온이 최대 4도까지 오차를 보였다. 손씨가 반품된 제품을 뜯어 내부를 확인한 결과, 메인보드가 애초 공급하기로 한 제품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회로기판과 웨이퍼(반도체 핵심부품), 전압장치 등 7개 부품이 변경됐다.



손씨는 “외관, 색상 등 경미한 변경이 아닌 핵심부품 변경은 의료기기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도 밟지 않았다”며 “부품이 바뀌고, 불량인 걸 알면서도 자신을 속여 납품했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누리집에 공개된 회수 조처 체온계.

식품의약품안전처 누리집에 공개된 회수 조처 체온계.


이후 파산한 손씨는 사재를 털어 직원 급여와 퇴직금을 정산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손씨는 지난해 5월 사기 혐의로 ㄱ씨를 경기 분당경찰서에 고소하고, 식약처에도 이런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분당서는 지난해 11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했다.



경찰은 국가인증을 받은 점, ㄱ씨가 제품 하자를 인지한 시점이 2021년 말로 보이는 점, 고소인 외에 ㄴ체온계를 납품받은 업체에서 큰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들어 “납품 당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체온계를 고소인에게 납품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불송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ㄴ체온계를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업체가 어딘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또 제품 하자를 인지한 시점도 ㄱ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손씨는 “식약처에 제출한 핵심부품 교체 내용 등 자료와 ㄴ체온계 제조사 대표로부터 ㄱ씨와 계약 전에도 ‘이미 여러건의 하자 민원이 제기됐다’는 대화 내용 등 증빙서류를 경찰에 제출했는데,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보완 수사를 요구했지만, 분당서는 올해 3월 다시 불송치 의견을 검찰에 전달했다. 검찰은 아직 결론을 내지 않은 상태다.



반면 식약처는 ‘인증 사항과 다른 원재료(PCB)가 사용된 의료기기’로 결론 내고, 지난달 27일 핵심부품을 갈아끼운 ㄴ체온계에 대해 전량 회수 조처를 결정했다. 손씨는 검찰에 “ㄱ씨의 사기죄뿐만 아니라 의료기기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경찰이 이렇게 부실하게 수사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분당서 관계자는 “검찰에서 해당 고소 사건 이의심의를 하고 있는 사안이어서 따로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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