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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투쟁 귀한 삶’ 동일방직 50년의 투쟁 [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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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투쟁 귀한 삶’ 동일방직 50년의 투쟁 [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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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열린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긴 투쟁 귀한 삶’ 출판기념회 모습. 필자 제공

지난 21일 열린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긴 투쟁 귀한 삶’ 출판기념회 모습. 필자 제공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긴 투쟁 귀한 삶’ 출판기념회가 지난 주말 열렸다. 추천글을 청탁받아 썼다가 퇴짜맞았다. 고쳐 써서 보냈지만 “하종강씨 글 참 잘 썼는데, 이렇게 쓰면 안 돼. 왜냐하면…”으로 시작되는 긴 전화를 받고 다시 썼다. 세번째로 쓴 글을 보내면서 “이대로 싣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서 그나마 실리게 됐다.



사실 이 노동자들은 그렇게 50년 세월을 싸워왔다. “이러저러한 투쟁을 했다”고 간단히 기록된 사건도 대부분 그 투쟁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 “싸울 때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당연히 나온다. 싸움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의견이 오간다. 그렇게 부대끼며 50년 세월을 싸워왔던 거다.



“20대 때부터 70대가 되기까지 50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대에 노동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1978년 해고된 124명 중 상당수가 나중에 이름이 바뀌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취업하느라 친척 언니나 동네 언니 이름으로 취업했다가 해고된 뒤에야 비로소 자기 이름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많이 알려진 ‘나체 시위’ ‘똥물 테러’ ‘부활절 투쟁’ ‘블랙리스트 철폐 투쟁’ 등에서 보여준 투사의 면모뿐만 아니라, 해고된 동료들이 결혼을 하거나, 가게를 열거나, 이사를 가거나, 김장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동지애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45년 전, 노동운동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만난 사람들이 바로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비슷한 또래가 많아서 서로 친구처럼 지냈다.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친구처럼 지냈다”는 것은 우리 노동운동사 속에서 얼마나 큰 ‘벼슬’인가?



당시 그 노동자들에게 귀에 못 박히게 들은 말이 “너는 배운 놈이니까…” “너는 대학생이니까…” “너는 지식인이니까…” “너는 ‘먹물’이니까…” 등이었다. 대화나 토론을 하다가 그런 지적을 당하고 나면 그 뒤에는 더 이상 진전이 안 되곤 했다. 등 뒤에서 항상 느껴지던 그 따가운 시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지금 민주노총 등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 역시 전태일 열사와 동일방직 등 1970년대 노동자들의 투쟁이 내린 뿌리가 거둔 성과다. 감히 말하거니와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 민주노총은 없었거나 훨씬 더 늦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6공단 입구 ‘닭장집’에 살던 동일방직 노동자가 있었는데, 날이면 날마다 그 방에 모였다. 한번은 친하게 지내던 청년이 “할 말이 있으니, 옥상에서 보자”고 했다. 이슬비가 내려 바닥이 젖어 엉거주춤 쪼그려 앉은 채 대화를 나눴다. 요약하면 “20대의 혈기왕성한 남녀가 이곳에서 자주 어울리다가 감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기게 될 테니,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운동적 차원에서만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야 한다”는 충고였다. 당연히 동의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중에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와 결혼을 했다.



출판기념회에서도 그 친구가 아내를 도와 여러가지 ‘잔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을 때, 40여년 전 그 ‘비 오는 날 옥상의 대화’를 회상하며 물었다. “혹시 그때부터 당신은 일찌감치 흑심을 품고, 나하고 더 친해질까 봐 미리 연막을 쳤던 것 아니오?”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세월이 지나니 아픈 시기도 그렇게 추억이 됐다. 4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에 내 이름은 “하종강이 강의를 했다”고 딱 한줄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 노동자들의 삶에 그렇게 남긴 흔적보다 더 귀하고 자랑스러운 ‘훈장’도 없을 것이다.



지난 21일 열린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긴 투쟁 귀한 삶’ 출판기념회에서 하종강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필자 제공

지난 21일 열린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긴 투쟁 귀한 삶’ 출판기념회에서 하종강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필자 제공


행사가 끝난 뒤 마지막까지 남은 몇명은 차마 헤어지지 못한 채 카페에 모여 앉아 긴 대화를 나눴다.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 얘기와 함께, 최근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자신이 대표로 활동했던 시민단체 ‘동물행동권 카라’에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 극히 부정적 언행을 한 일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 나오는 명대사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가 생각났다.



칼럼을 마무리하는데, 노동부 장관에 지명된 민주노총 전 위원장 김영훈 기관사가 열차를 운행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 세종호텔, 옵티칼하이테크, 동물권행동 카라 노동자들마저 ‘투쟁 ○○년사’를 써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 그가 해결해야 할 첫번째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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