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60주년 맞아 환수
日 고토쿠인 주지스님과
관월당 기증약정 체결해
1920년대 담보로 잡힌 뒤
日은행 넘어가 사찰에 기증
日 고토쿠인 주지스님과
관월당 기증약정 체결해
1920년대 담보로 잡힌 뒤
日은행 넘어가 사찰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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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찰에 있던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해체 전 모습. [사진 = 국가유산청] |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어 ‘관월당(観月堂)’을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 건물을 한국에 보낼 수 있어 감개무량합니다.”
사토 다카오 일본 가마쿠라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 주지 스님이 2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귀환 언론 공개회에서 “주지로 취임한 20여 년 전부터 한국에 돌려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해외 소재의 건축 문화유산 전체가 한국으로 온전하게 돌아온 건 관월당이 최초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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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관중인 해체된 관월당 부재 |
지난해 일본에서 해체되어 국내에 반입된 관월당 부재는 현재 경기도 파주 소재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지난 23일 관월당의 소장자인 일본 고토쿠인 주지 스님과 기증 약정을 체결했다.
관월당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원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소장처인 고토쿠인에서 이 건물을 관월당으로 불러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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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100년 만에 일본에서 귀환’ 언론공개회에서 ‘관월당’ 소장자인 사토 다카오 고덕원 주지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국가유산청은 “왕실 관련 건물로서 당초 서울 지역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증권의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조선 왕실이 돈을 빌리면서 관월당 건물을 담보로 잡혔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이 재정난으로 융자를 받을 때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했다고 보고 있다. 20세기 일본 대표 금융 거물이었던 스기노 기세이는 한국 건축물에 큰 관심을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통째로 관월당을 서울에서 일본 도쿄로 옮겼고, 1930년대에는 도쿄 인근 고토쿠인 사찰에 옮겨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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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당 3D 스캔 |
국가유산청은 “건축학적으로 관월당은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하며 파련대공, 안초공, 초엽, 초각 등 궁궐 및 궁가 건축에서 나타나는 의장 요소를 지니고 있다”며 “기와의 경우 용문(龍文), 거미문(蜘蛛文), 귀면문(鬼面文), 박쥐문(蝙蝠文) 등 다양한 형태의 암막새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용문의 경우 궁궐 또는 왕실과 관련된 건축적 요소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간결한 구조에 화려한 내부 장식과 격식으로 왕실급 사당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건물 해체 시 상량문 등 당시 건립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 건물의 원래 명칭, 조선에서의 위치, 배향 인물 등에 관한 내용은 향후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갈 과제로 남아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경복궁 내부 건축물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궁궐 밖 건물로 결론을 냈다고 국가유산청은 밝혔다.
관월당의 귀환은 2010년 대한불교조계종 주도로 추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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