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준호, '지역 정보 커뮤니티' 운영
귀농 대출, 농업만으로 안 돼…자칫 빚쟁이
일자리 다양화로 지방소멸 대응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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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란 문준호 씨는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구례로 내려왔다. 그는 임야에 고사리 등을 심고 수확하는 농부가 됐다. 지난달 22일 만난 문 씨는 "막상 내려와 보니 실망이 컸죠.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라고 말했다. /구례=이철영 기자 |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구례=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서울에서 나고 자란 문준호(38) 씨는 올해로 귀농 8년 차다. 부모님의 권유로 입학한 농업학교가 귀농의 단초가 됐다.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빗댄 문 씨는 농업과 금세 가까워졌다고 한다. 문 씨는 아버지의 고향인 구례로 내려와 임야에 산 농사를 시작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선산이 1만5000평 정도 됩니다. 원래 아버지께선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으셨어요. 제가 볼 땐 비효율적이었죠. 들이는 시간에 비해 소득이 많지 않았거든요.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두릅과 엄나무, 꾸지뽕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나무가 자라는 시간이었어요. 그전까진 수입을 낼 수가 없으니까요. 결국 4~5년 정도 직장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틈틈이 산 농사 공부도 했죠."
언뜻 보면 문 씨는 '산수저'다. 물려받은 선산의 규모를 보면 그렇다. 문 씨 역시 보통의 청년 귀농인들과 출발선이 다르다고 인정했다. 다만 땅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게 아니듯, 문 씨의 귀농을 팔자 좋은 무임승차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가 정착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은 평가의 대상이 될 만하다. 문 씨의 뚜렷한 문제의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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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씨는 두 곳의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다. 하나는 단체 채팅방인 '구례 꿈앗이'다. 익명이기에 누구든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다. 문 씨는 정보만 공유될 수 있다면 정착하려는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채팅방 참여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또 다른 커뮤니티는 동아리 형태의 영화상영회다. 문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설명하는 모습. /이철영 기자 |
"처음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올 때 약간의 기대가 있었어요. 구례는 관광지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내려와 보니 실망이 컸죠.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나더군요. 더군다나 저 같은 귀농 청년들은 서로 너무 동떨어져 있었어요. 연결되는 매개가 없었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정보가 중요한데 그걸 공유할만한 장이 없는 거예요. 각자도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문 씨는 두 곳의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다. 하나는 단체 채팅방인 '구례 꿈앗이'다. 익명이기에 누구든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다. 문 씨는 정보만 공유될 수 있다면 정착하려는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채팅방 참여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또 다른 커뮤니티는 동아리 형태의 영화상영회다.
"자연스러운 게 중요해요. 특정 단체를 거창하게 만들면 내키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거든요. 부담스럽잖아요. 원주민분들의 시선도 곱지 않을 수 있죠. 주변에선 걱정을 많이 했어요. 돈 되는 걸 해야 하는데 이런 걸 뭐 하려고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들었죠. 부모님도 그렇게 좋아하시진 않으셨어요. 농사는 뒷전이고 자꾸 이런 것만 한다고 하시면서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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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로 귀농한 문 씨의 홍보물과 제품. /이철영 기자 |
문 씨가 귀농 청년들의 구심점 역할을 도맡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이곳에 오더라도 '정착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거창한 문화 시설은 차치하더라도 초고령 지역인 까닭에 정책 비중이 고령층에 쏠려 있었다. 청년들의 목소리도 소수에 그쳐 간단한 건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문 씨는 청년들의 귀농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청년창업농에 대해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창업농은 어떻게 보면 매우 위험한 정책이에요. 스마트팜이라며 최대 5억원을 저리에 대출해 준다고 홍보하죠. 하지만 농업도 사업이에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대출을 받아놓고 이걸 전부 농업으로만 풀어가라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까딱하다간 빚쟁이가 될 수 있어요. 저는 거꾸로 지자체가 빈 농지를 사들여 스마트팜을 짓고, 청년들에게 임대를 내어주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봐요. 지역에 노는 땅들이 많거든요. 빈 건물들도 많아요. 지자체가 이걸 사들여서 리모델링을하고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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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씨는 청년 귀농인들의 정착이나 지방소멸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수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지방에 대기업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지자체에서 지역 고용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철영 기자 |
문 씨는 청년 귀농인들의 정착이나 지방소멸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앙과 지방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보고되는 수치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와서 보고 듣고 느껴야만 작은 문제부터 해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기업이나 기관을 지방에 내려보내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지방에 대기업이 들어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봐요. 대신 지자체에서 지역 고용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해요. 여기는 일자리가 다양하지 않거든요. 결국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장애물인 셈이죠. 저희는 준비가 돼 있어요. 그만큼 잘하고 싶고요. 경남 하동군에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 친구들과 화개장터에서 이벤트성으로 소상공인 마켓을 열어보자고 논의하고 있어요. 그저 저희 같은 청년들에게 정부가 조금의 관심이라도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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