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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중심제와 국회의원 장관겸직 금지 필요성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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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중심제와 국회의원 장관겸직 금지 필요성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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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의원의 총리·장관 겸직, 대통령제와 상충
'꿩 먹고 알 먹는' 의원들만 누리는 특권
여당, 대통령제의 권력분립 원칙 지켜야


조승래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이 23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승래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이 23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 공직이나 전문직에서의 겸직은 늘 논쟁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을 단행하면서 교수의 변호사·의사 겸직을 금지했다. 교수변호사는 대학 연구실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고, 교수의사는 자기 집에서 진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5공화국에서는 장관·국회의원과 변호사·교수·의사의 겸직이 널리 허용됐다. 국회의원(이하 의원)이 변호사·의사로 개업해서 수입을 올리고, 법관이 청와대 파견 근무한 후 복직하고, 교수가 의원이 되면 휴직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의원이 되면 교수는 퇴임해야 하고, 의원‧교수의 변호사·의사의 개업도 금지한다.

그런데 87년 체제에서도 유독 의원과 정부고위직 겸직은 제한되지 않는다. 의원이 총리·장관을 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 특별보좌관까지 겸하기도 한다. 의원은 각자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총리·장관을 겸직하는 동안 의원직의 정상 수행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사법권 독립을 위해 법관의 의원이나 정부직 겸직을, 의원의 법관 겸직도 금지한다. 사법관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퇴임 후 곧바로 대통령실로 직행하는 것도 차단한다.

의원내각제는 내각과 의회의 연성적 권력분립에 따른 '권력 공화'(collaboration) 원리에 입각하므로 의원(議員)이 내각을 구성한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습귀족인 상원의원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겸직하였다. 하지만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에서는 의원과 장관의 겸직을 금지한다. 미국에서는 의원이 장관이 되면 즉시 의원직을 사퇴한다. 프랑스에서는 제3·제4공화국 의원내각제에서 "정부는 무너져도 장관의원은 존속"하는 의원 전성시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제5공화국 드골 헌법에서는 장관 겸직을 금지한다.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에서 의원과 정부직의 겸직이 넘쳐난다. 의원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특히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면서 의원이 낙마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보니 대통령도 의원을 선호한다. 경성적 권력분립원리에 입각한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과 정부직의 겸직은 제도 자체의 본질에 어긋난다. 현실적으로 장관의원이 국회에서 행한 발언·표결이 면책특권인지 여부도 논쟁적이다.

의정 활동을 같이한 대통령이 의원들의 입각 유혹을 내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차제에 겸직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교수와 의원이 변호사·의사를, 의원이 법관을, 법관이 의원을 겸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원이 총리·장관을 겸직해서는 안 된다. 최근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도 의원이 중심축을 이룬다. 위원의 면면을 보면 국회의 위원회인지, 정부의 위원회인지 헷갈릴 정도다. 더구나 현역 의원이 대변인을 하니 국회 브리핑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오히려 최민희 의원의 위원직 사양이 미담으로 전해진다.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취임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헌법기관인 의원이 대통령 직속기구 위원직을 맡는 것은 의원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새 정부의 총리 후보자뿐만 아니라 10개 부처 신임 장관후보자 중 5명이 현역의원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정부여당이 권력분립원리에 입각한 제도의 틀을 스스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의원이 총리‧장관과 같은 정부직을 맡으면 깨끗이 사퇴하는 것이 정도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하는 게 맞는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