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찰에 있던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의 해체 전 모습. 국가유산청 |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어 '관월당(觀月堂)'을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 건물을 한국에 보낼 수 있어 감개무량합니다."
사토 다카오 일본 가마쿠라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 주지 스님이 2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귀환 언론 공개회에서 "주지로 취임한 20여 년 전부터 한국에 돌려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반출된 문화유산을 반환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요한 건 바로 마음가짐"이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밝혔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해외로 반출된 건축 유산이 온전하게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해체돼 국내에 반입된 관월당 부재는 현재 경기도 파주 소재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석재·철물 401점, 기와 3457점, 목재 1124점 등 총 4982점에 달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 23일 관월당의 소장자인 고토쿠인 주지 스님과 기증 약정을 체결했다.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원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소장처인 고토쿠인에서 관월당으로 불러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국가유산청은 "왕실 관련 건물로서 서울 궁궐 밖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증권의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조선 왕실이 돈을 빌리면서 관월당 건물을 담보로 잡혔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이 재정난으로 융자를 받을 때 일본 금융계 거물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 건축물에 관심이 컸던 그는 1920년대 관월당을 서울에서 해체해 일본 도쿄로 옮겼고 1930년대에는 도쿄 인근 고토쿠인 사찰에 옮겨 기증했다.
건축학적으로 관월당은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한다. 왕실과 관련한 건축적 요소인 용문 기와를 사용했다. 다만 건물 해체 시 상량문 등 당시 건립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건물의 원래 명칭, 조선에서의 위치, 배향 인물 등에 관한 내용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2010년 불교계를 중심으로 환수 논의가 나왔으나 신뢰 부족과 일본 우익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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