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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 아무나유니온 대표
일자리를 수직적으로 그려보자. 정규직을 맨 꼭대기에 두면 그 밑에 무기계약직, 시간제, 파견이나 용역노동자가 있다. 다시 그 밑에 배달의민족과 쿠팡 같은 장소 기반 플랫폼 노동, 크몽이나 숨고와 같은 온라인에 기반을 둔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독립계약자가 있다. 또 그 밑에는 고용원이 있거나 없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놓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노동시장은 완벽하게 수직으로 서열화된 차별 구조다. 수직적으로 보면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며 계층으로 분할된 남이다.
수직적 시각에 문제가 있다. 분명히 노동시장을 수직으로 보는 것은 냉혹한 차별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몇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사실과 어긋난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보는 것은 편하지만, 놓치는 사실이 생긴다. 가령 대기업의 사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이라고 모두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사는 것이 아니다.
단일성 집착도 문제다. 정규직이 아닌 경우는 맨 꼭대기의 정규직 노동자가 되기를 꿈꿔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이는 마치 학생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 모두가 1등을 추앙하게 만드는 것과 닮았다. 사실 학교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기보다는 세상이 학교를 이렇게 만든 것인데, 자꾸 어른들은 교육이 문제라면서 자신의 문제를 감춘다.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듯이 모두가 대기업 정규직이 되는 세상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직적 사고는 계층 상승 경쟁에 불을 붙였다. 꼭대기의 정규직 일자리를 향해 입시와 취업에 매달리는 것은 물론 직업을 가진 뒤에도 꼭대기를 향한 경쟁이 계속된다. 이런 분위기는 너무나 강렬해서 노동운동마저 흡수했다. 비정규직을 반드시 정규직이 되어야 할 존재로 만든 것이다. 그것은 계급 운동을 계층 상승 운동과 뒤섞이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었다.
이는 운동의 사법화로 이어졌다. 비정규직이 스스로 단결하고, 비정규직 너머의 노동과 단결하는 것보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소송에 불이 붙은 지 오래다.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 강력하게 뭉쳐서 노동 조건을 바꿀 자원이 부족하다면 소송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 운동을 법에 붙잡히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수직적 사고는 순환적 사고를 차단한다. 수직적 사고는 오르려는 집착을 만든다. 자원의 순환을 위한 노력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위로 오르려는 생각에 집착하면 부를 나누는 순환적 생각이 약해진다. 비정규직이 그 자리로 자원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 정규직 되기를 꿈꾸면 순환적 사고는 사라진다. 이재명 정부의 고위직에 발탁된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 인사는 성장기에는 축적이 중요하지만, 저성장기에는 순환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도 자원의 순환이 중요하다.
오르기에 집착하면 다양한 노동의 고유한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이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그 특징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양한 노동이 늘었다. 독립계약을 맺고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프리랜서들은 원청 사용자가 분명한가만 따질 수 없다. 노동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는 도급단가로 소득을 얻는데 최저임금 적용은 남의 일 같다.
마지막으로 ‘자력화 경로’를 왜곡한다. 자력화 경로란 길 찾기 앱에 현 위치를 입력하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보여주는 그곳까지 가는 길처럼, 무권리로 일하는 시민이 노동권을 누리는 권리 주인이 되기까지 필요한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기성 노조는 공장이나 직장에서 일하면서 노동3권을 누리는 노조를 만들었다. 새로운 노동들은 그런 경로를 통해 노동권을 누릴 수 없다. 자꾸 정규직 기성 노조를 쳐다보면 자신이 가야 할 경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성 노조 사례를 적용할 수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다수가 무권리 상태다. 기성 노조의 사례를 플랫폼 프리랜서에게 적용하면 실패한다. 새로운 경로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가 바뀌어도 사회운동이 그대로면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노동시장을 수직적으로 보는 세계관 탓에 놓치는 사실, 단일화 함정, 계층 상승 경쟁, 운동의 사법화, 순환적 사고 차단, 다양한 노동의 특징 무시, 자력화 경로 왜곡 등 일곱가지 시각을 벗어날 때, 무권리로 일하는 시민이 스스로 권리 주인이 되는 경로의 개발이 훨씬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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