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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자고로 불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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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자고로 불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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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출판자본과 식민지 출판시장 다룬 ‘불량한 책들의 문화사’



일본 니혼대학 국문학과에서 일본의 근현대 문학을 강의하는 저자 고영란은 ‘전후라는 이데올로기’(2013), ‘검열의 제국’(공저·2016) 등으로 기억과 텍스트 사이의 교섭과 간섭을 밝혀왔다.



‘불량한 책들의 문화사’(윤인로 옮김, 푸른역사 펴냄)에서 저자는 일본제국에서 일본어 출판이 ‘협력하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불량한 조선인’까지 양성했다는 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저항 아니면 협력이라는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어 공간, 시대, 텍스트 사이의 중층적인 진실을 집요하게 캐낸 성과가 두드러진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무산자’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이 조선어는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독일에서 직접 들여오며 소개된 것이 아니라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처음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가 상정한 계급은 ‘일본인 남성 집단’뿐이었지만 이후 일본인의 동지로 조선인 무산자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의미가 재구성된다. 일본제국이 사회주의를 탄압할수록 관련 서적을 열망하는 독자는 늘어갔다. 판매금지 명령이 떨어져도 책은 유통됐다. 저항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본어 서적은 해갈의 창구였다.



하야시 후미코. 1949년 촬영. ‘종군 작가’ 하야시의 활약을 담은 신문은 일본어로만 발간됐지만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하야시 후미코. 1949년 촬영. ‘종군 작가’ 하야시의 활약을 담은 신문은 일본어로만 발간됐지만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출판물은 제국의 정책을 홍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야시 후미코 등 스타 여성작가를 전선에 보내 종군기를 쓰게 한 것도 프로파간다(선전)를 위해서였다. ‘문학 애호적 인텔리 여성들의 거처’였던 여성 잡지에 실린 글을 보고 대중 여성도 전쟁을 열띠게 응원했다. 종군 여성작가가 전사하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군신’이 될 가능성이 컸다. ‘종군 작가’ 하야시의 활약을 담은 신문은 일본어로만 발간됐지만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어 단행본, 신문, 잡지는 다양한 경로로 식민지 공간에 확산됐다. 여성작가 최정희는 스스로 ‘한국의 하야시 후미코’가 되어 전쟁에 협력할 정도였다. 1920년대 여성해방을 호소하던 신여성의 기세가 사그라들고, 1930년대 모성 담론이 득세하던 때 최정희는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내선일체 이념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 밖에도 도서관, 평민 행상과 야시장, 불령선인, 검열, 미디어 자본시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면서 러일전쟁부터 한국전쟁까지 일본제국의 출판자본과 식민지 출판시장의 역사를 검토한다. 일본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 이례적으로 현지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418쪽, 2만89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레이빙

매켄지 워크 지음, 김보영 옮김, 접촉면 펴냄, 1만8천원



노년에 접어든 트랜스섹슈얼 작가 매켄지 워크가 테크노클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춤을 추며 겪은 해리의 느낌을 개념화하고 육체와 건강을 둘러싼 상황을 분석한다. ‘오토픽션’ 또는 ‘자기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지성적인 글쓰기가 놀랍다. ‘떠오르는 숨’을 펴낸 출판사 접촉면의 두 번째 책.








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등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7500원



한겨레문학상 30주년 기념 수상 작가 20명의 앤솔러지. 당선작의 프롤로그 또는 에필로그 형식이거나 사건에 관해 남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승민, 김희재, 강성봉, 김유원, 서수진, 박서련, 강화길, 한은형, 강태식, 장강명, 최진영, 주원규, 서진, 조영아, 조두진, 권리, 심윤경, 박정애, 한창훈, 김연이 참여했다.








한강, 1968

김원 지음, 혜화1117 펴냄, 2만4천원



30년 동안 강 전문가로 일해온 저자가 한강을 깊고 넓게 파고들었다. 1968년 2월10일 밤섬 폭파는 한강 훼손과 상실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강은 급속히 제 모습을 잃고 변해간다.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인간은 한강의 모래를 파고, 물길을 바꾸고, 아파트를 지었다. 한강은 인간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

민지형 등 지음, 라우더북스 펴냄, 1만9천원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여성 창작자 6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렸다. 소설가 민지형·임소라·류시은과 만화가 정재윤·미역의효능·들개이빨이 참여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출판사는 여성 독자의 안전을 고려해 ‘호신용 양면 표지’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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