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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역균형발전, 답은 '국책은행 개편'에 있다

머니투데이 정성훈한국지역경영원 원장·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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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역균형발전, 답은 '국책은행 개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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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인구 유출이나 교육 기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역 불균형은 산업,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금융'에 걸친 구조적 문제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금융의 수도권 편중은 지방경제의 자생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 편중의 악순환 구조.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기업대출의 약 78%가 수도권에서 집행되고 있으며, 벤처·스타트업 투자의 87%가 서울 강남 3구와 판교, 여의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자금의 지리적 편중을 넘어, 우수 인재, 혁신 기업, 양질의 일자리, 연구개발 역량까지 수도권으로 흡수되는 복합적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방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업 생태계의 토대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이는 다시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져 청년층의 수도권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지방은 '인구 감소 → 경제 위축 → 금융 철수'라는 부의 나선형(negative spiral)에 갇혀 있다.

지방은행 신설의 한계와 새로운 접근.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의 대안으로 신규 지방은행 설립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은 명확하다. 신설 은행은 최소 3,000억 원 이상의 초기 자본금, 수천억 원 규모의 IT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확보,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 등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더욱이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지방 산업기반의 약화는 신설 은행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이 있다. 바로 기존 국책은행의 지역 본부를 자회사 형태의 '지역 국책은행'으로 독립시키는 개편 모델이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은 이미 전국 주요 거점에 지역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을 중앙 지주회사 체제 하의 지역별 자회사로 전환하여, 독립적인 금융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책은행 지역 자회사 모델의 전략적 이점. 첫째, 운영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 실현이다. 중앙 지주회사는 IT 시스템,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 등 백오피스 기능을 통합 관리하여 중복 투자를 방지한다. 각 지역 자회사는 이러한 인프라를 공유하면서도 지역 특화 금융서비스 개발과 고객 관리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정책금융 기능의 지역화다. 기존 상업은행과 달리 국책은행은 단기 수익성보다 지역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우선할 수 있다. 이는 지역 전략산업에 대한 인내자본(patient capital) 공급,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 맞춤형 금융 지원,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지역경제 승수효과 창출이다. 2018년 기준 기업은행 부산·울산·경남 지역본부는 지역 시중은행과 유사한 여신 규모를 운용하면서도 고용 인원은 1,000명 가까이 적었다. 본점의 지역 소재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고급 일자리 창출, 의사결정권의 지역 이전, 연관 산업 집적 효과 등 실질적인 경제적 파급력을 갖는다.

넷째, 금융시장 경쟁 촉진과 서비스 격차 해소다. 전국 주요 거점에 국책은행 자회사가 설립되면, 수도권 대형은행 중심의 과점적 시장구조가 완화된다. 이는 금융서비스의 가격 경쟁력 향상과 지역 맞춤형 상품 개발을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기업과 주민의 금융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우려 사항에 대한 해법. 지방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나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중앙 지주회사의 거버넌스 하에서 운영되는 자회사 모델은 이러한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그룹들이 채택하는 이 구조는 △이사회의 독립성 보장 △명확한 권한 위임과 책임 체계 △투명한 성과 평가 시스템을 통해 경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오히려 현재 일부 지방은행에서 나타나는 지역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나 비합리적 대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시급성. 우리는 지금 '자본이 머무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지방의 인구소멸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28개 기초자치단체 중 106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금융 인프라의 지역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책은행의 지역 자회사화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공간적 재구조화를 위한 핵심 정책수단이다. 이는 지역에 뿌리내린 금융 플랫폼을 통해 자금의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지방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복원하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은 더 이상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절박한 과제다. 국책은행 개편은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제도적 해법이다. 지방을 위한 금융의 길을 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의 시작이다.

정성훈 한국지역경영원 원장·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정성훈 한국지역경영원 원장·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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