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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불참' 李대통령 실용외교... 전문가들 "한국 외교셈법 더 복잡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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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불참' 李대통령 실용외교... 전문가들 "한국 외교셈법 더 복잡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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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장관 및 전문가 제언>
"차기 회의 참석 필요" vs. "중러 관계 위해 참석 말아야"
"한국,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 위한 선진국 외교 필요"


네덜란드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장. 헤이그=로이터연합

네덜란드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장. 헤이그=로이터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현안과 중동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하면서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의 이란 공습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대응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유럽·중동 정세, 이 전쟁들이 향후 한반도에 미칠 영향 등 셈법도 복잡해졌다. 당장 내년에도 나토 정상회의 초청이 이뤄진다면 이 대통령이 참석해야 할지 여부를 두고 벌써부터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향후 나토 참석해야" vs. "진영구도 탈피해야"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23일 한국일보가 전직 장관과 중동 및 유라시아, 북한 분야 전문가들에 물은 결과, 이 대통령이 나토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외교적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전날 이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나토 불참을 결심한데 이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이날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 진영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토 참석은) 물리적으로 무리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내년 나토 정상회의에는 참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질서'를 원칙으로 한 한국의 외교 지향점은 명확히 해야 하고 외교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며 "주변 4강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정치·경제적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다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불참 결정은 가치연대 지속 등 중도 실용외교의 진정성을 시험대에 올렸다고 볼 수 있다"며 "러시아 파병을 통해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나토 등 유사입장국과의 연대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러관계 개선은 특사파견과 중단됐던 고위급 대화를 복원하는 양자 차원의 단계적 접근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도 "나토 정상회의든 한미정상회담이든 어떻게 대응할지는 현장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이상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실전에 갔을 때 행동하기가 어렵다"며 "나토 정상회의 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도·태평양 4개국(IP4) 회담은 관세문제 등 안보와 관련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놓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 및 외교적 중립성을 위해 차기 나토 정상회의에도 참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나토가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의 압박기구로 변질된 지 오래"라며 "남북관계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참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의 진영화, 편가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 아닌 미국이 2017년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나토 중심 군사동맹을 확장했기 때문"이라며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고, 국제사회 전체에서 한국 외교의 중립성과 다자주의 원칙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일본식 외교 모델을 참고할 만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이란 사태가 터졌을 때 일본 외무장관은 이란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했다"며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동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우리 측 입장과 의견을 제시하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중재자 또는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위기는 기회"라며 "우리가 외교적 노력과 적극적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국제사회 속 위상도 높일 뿐만 아니라 외교 지평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의 논리로 가는 국제질서…세계 도처서 분쟁 위험"


이란 사태가 한반도 정세와 중동 국가들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윤 이사장은 이번 이란 공습 사태를 두고 "미국의 리더십하에 유지됐던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폐기처분된 상황에서 세계 도처에서 분쟁이 더 빈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 입장에서는 심각한 의미가 던져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 교수도 "이라크 등 친이란 세력에 의한 돌발행동이나 반발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공습을 통해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공격을 당했다고 자각하게 되면 핵안보질서 자체에도 심각한 위기와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이란 의회 차원에서 호르무즈 봉쇄를 의결했지만, 이는 외교적 수단일 뿐 실제 이를 이행할 여력이 안 된다"며 외교적 해법을 우선 모색할 것이라고 봤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이란에 대한 공격은 자연스럽게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해온 북한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자신의 성과로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북러 군사동맹과 북미대화 등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노려온 북한에 많은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적 목표는 북한이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문제"라며 "그러나 북한은 최소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전략자산 전개가 있지 않은 이상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