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회담 불발 '美 도미노 관세' 시한 도래…기업 '비상경영 돌입'
유가 급등에 물가 상승 우려↑…금리 인하·재정 확대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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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다. 2025.6.1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대한민국 경제가 미국 관세와 중동 전쟁, 내수 침체가 중첩되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미국이 철강과 파생상품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는 데드라인이 하루 앞(23일·현지 시각)으로 임박했다. 미국의 참전과 이란의 결사 항전으로 중동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됐고 국제유가는 급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과 증시 폭락으로 이어져 내수 침체를 더 심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국정 공백 상태가 해소됐고, '경제'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한미 빅딜 고대했는데"…'최대 50%' 가전 관세 현실화
2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가전업계는 23일(현지시간) 발효되는 미국의 철강 파생제품 관세에 대응해 현지 가격 인상 및 재고 축적 등 '플랜B' 가동을 검토 중이다. 미 상무부는 최근 철강 파생제품 목록에 냉장고·건조기·세탁기·식기세척기·냉동고를 추가, 수입산 철강 함유량에 따라 최대 50%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철강 파생제품 관세는 '가전 관세'로 불릴 만큼 업계에 치명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미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지만 현지 생산은 세탁기 등 일부 제품에 국한돼 있다. 이 관세는 미국산 철강을 써야 피할 수 있는데, 현지 생산 가전의 미국산 철강 비중은 미미한 실정이다.
KB증권에 따르면 이번 추가 관세 부과가 발표된 항목들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36억 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2.8%를 차지한다. 두 가전업체가 멕시코 공장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비중(2억 4000만 달러)까지 더하면 이번 관세로 영향을 받는 금액은 38억 4000만 달러(약 5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가전제품 원가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40%에 달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가전제품은 마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관세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특히 (철강 함유량이 높은) 대형 가전은 타격이 더 클 것"이라며 "(관세 부과) 발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효되는 탓에 업계에서도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가전업계는 관세 발효 전 한미 정상회담 성사를 학수고대했지만, G7 정상회의에 이어 나토(NATO) 정상회의까지 양국 정상의 만남이 불발하면서 '컨틴전시 플랜' 가동이 불가피해졌다. 미 행정부는 현 시각까지 철강 파생제품 관세의 유예 및 대상 변경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세가 부과되는 가전제품의 현지 가격을 인상하는 한편, 현지 생산 가전의 미국산 철강 구매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제조 원가 개선, 판가 인상 등 전체 로드맵은 이미 준비돼 있다"며 판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공급망 재편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TV·가전 분야 관세 대응책과 관련해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한 일부 물량의 생잔지 이전을 고려해 관세 영향을 줄이겠다"고 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4월 서울대 특강에서 "우선 생산지 변경이나 가격 인상 등 순차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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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미국의 이란 타격 등 대내외 악재에 3000선을 내주며 약세로 출발했다. 지난주 말 3년 반 만의 3000선 회복 후 거래일 기준 하루 만이다. 2025.6.2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유가 폭등 땐 물가 상승·증시 폭락"…시장 전체가 '폭풍권'
문제는 철강 파생제품 관세는 당면 악재의 일부라는 것이다. 미국 관세는 이달 말 수입산 스마트폰(최소 25%), 내달 9일(상호관세 25%) 순으로 연쇄 발효를 앞두고 있다. 나아가 중동 전쟁 심화는 유가와 물류비 폭등을 유발하고, 이는 물가 상승과 금융시장 위기를 부추겨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산·학계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미칠 '충격파'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해협은 우리나라 전체 수입 원유의 72%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물론 원자잿값과 해상운임 급등이 불가피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국제유가는 배럴 당 100~130달러로 뛸 수 있다.
국제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과 증권시장 불안을 초래한다. 특히 물가 상승은 금리 인하 여력을 제약하기 때문에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경기 반등을 위해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이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동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90~100달러까지 올라가면 원재료 가격과 운임이 크게 오르기 때문에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 타격이 크다"며 "유가 관리가 가장 시급하다. 물가 상승을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은 많지 않지만 어떤 문제들이 생길지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 상승은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하와 추경을 통한 재정 확대 역시 어렵게 만든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 물가 상승을 자극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을 위한 '핵심 카드'를 쓰기 힘들게 된다.
물가보다 증시 폭락을 더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면 글로벌 증권시장이 폭락할 수 있다. 이는 국내외 시장에 모두 미치는 문제"라며 "부의 축소 효과에 의한 경기 부진과 내수 부진이 진짜 문제"라고 했다. 신 교수는 "물가 상승에 의한 경기 침체보다 (증시 폭락의 영향이) 5배는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중동 사태 관련 범부처 합동 비상대응반을 꾸리고 금융·에너지·수출입·해운물류 등 부문별 동향을 24시간 점검, 필요시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신속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 주재로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증시 상황 긴급점검회의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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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유관기관 증시상황 긴급 점검회의'에서 미국의 이란 군사개입에 대한 해외 시각과 국내 증시의 외국인·기관투자자 등 수급 상황을 긴급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3/뉴스1 |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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