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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고루-③] "믿었던 정부 정책에 나앉을 뻔"…딸기 청년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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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고루-③] "믿었던 정부 정책에 나앉을 뻔"…딸기 청년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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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창농 대출로 스마트팜 도전
턱 없이 모자랐던 자본…결국 '추가 대출'
때마다 담당 공무원 교체, 구조적 문제도


귀농 청년 정광용 씨는 8년여 직장 생활 끝에 연고도 없는 전북 익산에 내려와 딸기를 심었다. 지난달 21일 만난 정 씨는 쉽지 않았던 정착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익산=이철영 기자

귀농 청년 정광용 씨는 8년여 직장 생활 끝에 연고도 없는 전북 익산에 내려와 딸기를 심었다. 지난달 21일 만난 정 씨는 쉽지 않았던 정착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익산=이철영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익산=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서울 청년이 연고도 없는 전북 익산에 내려와 딸기를 심었다. 누구보다 철저히 준비했기에 두려움보단 기대가 앞섰다. 지방소멸 대응 차원에서 청년 귀농인들을 위해 마련된 정부 정책도 든든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서사의 시작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곳곳에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만사형통일 줄 알았던 정부 대출은 턱 없이 모자랐으며, 멘티-멘토 프로그램에선 멘티가 멘토를 직접 찾아야 했다. 전북 익산에서 '오늘의 딸기'를 운영 중인 귀농 청년 정광용(38) 씨의 이야기다.

"1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체험 농장을 해요. 주요 고객님들은 어린아이들이죠.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이곳에서 딸기 수확도 해보고, 딸기로 청이나 아이스크림도 만들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도 있죠. 아이들이 아주 좋아해요. 포털로 예약을 받는데 계산해 보니 1만명 정도가 다녀갔다고 해요. 이곳 익산뿐만 아니라 대전, 군산, 전주에서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하하."

정 씨가 부인과 함께 운영 중인 '오늘의 딸기' 내부 모습. 딸기 체험을 위해 마련된 이 공간을 찾는 이들만 1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정 씨는 연착륙에 성공한 귀농 청년이었지만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이철영 기자

정 씨가 부인과 함께 운영 중인 '오늘의 딸기' 내부 모습. 딸기 체험을 위해 마련된 이 공간을 찾는 이들만 1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정 씨는 연착륙에 성공한 귀농 청년이었지만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이철영 기자


딸기 체험을 위해 한적한 시골을 찾는 이들이 1만명이라니. 정 씨의 웃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 씨가 아내와 함께 운영 중인 딸기 농장은 '업다운 행잉베드'가 적용된 스마트팜이었다. 딸기는 일일이 손으로 심고 거둬야 하기에 높낮이 조절이 필수적이다. 딸기 체험을 하려는 키가 작은 아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언뜻 보기에 정 씨는 큰 무리 없이 연착륙에 성공한 귀농 청년이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어려움이요? 정말 많았죠. 저는 청년창업농으로 시작했어요. 5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고정 금리 1.5%에 5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이었죠. 여기에 자부담도 꽤 들어갔어요. 땅도 사야 하고 시설 비용도 만만치 않거든요. 이것 말고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돈이 계속 불어났어요. 정부 정책만 보면 다 될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따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담보를 대라는 거예요. 제 신용도가 1등급인데도 불구하고요. 저 같은 청년이 담보로 내놓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정말 그때는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죠."

정 씨가 아무런 준비 없이 귀농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그는 8여 년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치열하게 살았던 탓에 후폭풍도 상당했다.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에 정 씨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2022년 2월부터 귀농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어 정부 정책과 예상 필요 자금을 파악하는 데만 꼬박 몇 개월을 보냈다. 그해 7월 익산에 내려온 정 씨는 농업기술센터에 있는 귀농하우스에서 생활, 2023년 9월에서야 첫 딸기 재배를 시작했다. 준비 기간만 2년에 가까웠다.

정 씨는 정착 과정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구석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특히 연고도 없는 상황이었던 터라 스스로 헤쳐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정 씨 부부가 길러낸 딸기. /이철영 기자

정 씨는 정착 과정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구석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특히 연고도 없는 상황이었던 터라 스스로 헤쳐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정 씨 부부가 길러낸 딸기. /이철영 기자


"정보가 중요했지만 얻을 방법이 정말 없었어요.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멘티가 멘토를 직접 찾아야 하는 구조였어요. 연고조차 없는 저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딸기를 선택한 것도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에요. 조언을 얻을 데가 없다 보니 헤매기 일쑤였죠. 어느 날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과목별로 연간 소득을 평균치로 보여주는 게 있더라고요. 딸기는 고소득 작물에 속했어요. 이거다 싶었고, 저는 운이 좋게 풀린 겁니다."


지역에서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일환으로 귀농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정 씨 역시 그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도움이 됐다'기 보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 까닭은 정 씨 주변 적지 않은 귀농 청년들이 서울로 유턴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정책은 둘째치더라도 그 지속성이 어느 정도는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정 씨는 공무원 인사 특성상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바뀌는 구조를 손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특히 귀농·귀촌이나 지방소멸 대응의 경우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철영 기자

정 씨는 공무원 인사 특성상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바뀌는 구조를 손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특히 귀농·귀촌이나 지방소멸 대응의 경우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철영 기자


"간단한 건의를 하더라도 담당 부서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거기다 공무원분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발령지나 타 부서로 가버리죠. 그럼 새로 온 분이 업무 파악을 다시 해야 하고, 그분을 상대로 다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동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죠. 그저 기다리는 거예요. 하다못해 저희 하우스 앞쪽 길 보셨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비포장도로였어요. 비가 오면 발이 푹푹 빠지죠. 100m도 채 되지 않은 구간이 포장되는데 하세월이었어요. 그동안 딸기 300박스를 일일이 손으로 옮겼죠."

지금도 우여곡절이 많지만 정 씨는 귀농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눈높이를 낮추고 내려온 터라 생활의 큰 불편함도 없다고 했다. 30분이면 익산 시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정 씨에게도 한편의 고민은 있었다.


"저희 농장으로 오는 분들은 많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나시죠. 이 주변에는 특별히 뭘 할 게 없거든요. 머물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어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텐데, 그러기엔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저는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기업이 들어온다면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하신 분들을 위한 대책도 강구돼야 해요. 그분들이 볼 때는 밥그릇을 뺏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상생을 중심으로 한 유치 후속 대책이 동반된다면 어떨까요?"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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