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사진|스타투데이DB |
가수 패티김의 러브스토리가 공개됐다.
지난 22일 방송된 TV조선 ‘모던인물사 미스터리’에서는 패티김이 스타 작곡가 길옥윤과 이혼한 후 이탈리아 남자와 재혼을 한 스토리가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패티김은 ‘초우’로 사랑받던 당시 인기 작곡가 길옥윤과 만나 가까워졌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결혼 프러포즈는 패티 킴이 먼저 했다고.
두 사람의 결혼식은 최고급 호텔에서 열렸다. 주례는 김종필 총리, 사회는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맡았고, 당시 정재계 대한민국의 권력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혼여행으로는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을 찾아가 위문 공연을 펼쳤다.
패티김은 ‘이별’이란 곡을 발표한 뒤 길옥균과 이혼 기자회견을 열고 헤어졌다. 길옥윤은 딸을 위해 ‘1990년’이란 곡을 썼다고.
이후 패티김은 전남편 길옥윤에 대해 “살았을 때 안 좋은 기억보다 같이 살면서 좋은 노래도 많이 받아서 행복한 기억이 크다. 좋은 동반자였다”고 회고했다.
패티김과 전남편 길옥윤. 사진|TV조선 방송화면 캡처 |
패티김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와 딸. 사진|TV조선 방송화면 캡처 |
패티김은 길옥윤과 이혼 후 이탈리아인 사업가 아르만도 게디니와 만나 재혼했다.
사업차 한국을 방문한 아르만도 게디니는 패티김의 공연을 보고 반했고, 패티김의 이혼 소식이 전해진 후 공연마다 장미꽃 100송이를 매일 50일간 보냈다. 그는 패티김에게 “당신이 아이를 낳아준다면 아이 몸무게만큼 보석을 주겠다”고 프러포즈를 했다.
패티김은 아르만도 게디니와 1976년 결혼 후 3.6kg의 딸을 출산했다. 실제로 패티김은 7캐럿이 넘는 블루 사파이어를 받았다고.
아르만도 게디니는 길옥윤과 패티김 사이에서 자란 딸까지 육아하며 딸 사랑을 보여줬다.
공개된 일화에 따르면 패티김이 전남편과 낳은 딸이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앞니 4개가 나가자, 딸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지금 빨리 부러진 치아를 찾아오면 신경이 죽기 전이면 붙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갈밭은 뒤져가며 찾았다는 것.
패티김은 지난 1958년 스무 살의 나이로 미 8군 무대에서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했다. ‘서울의 찬가’ ‘이별’ ‘초우’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겼다.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가요계 숱한 발자취를 남겼다. ‘일본 정부가 초청한 첫 한국 가수’(1960년), ‘미국 카네기홀 첫 한국 가수 공연’(1978년) 등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예술적인 패션 감각으로 한국 최초 화보 촬영-해외 로케 광고 촬영을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2012년 JTBC ‘패티김 쇼’를 끝으로 은퇴한 그는 2022년 ‘불후의 명곡’을 통해 약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2023년 11월 ‘불후의 명곡 in 뉴욕’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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