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新산업책략] <3>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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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개편/그래픽=김현정 |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1월 27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약 2년 만에 재가동했다. 불과 엿새 후 터진 '12·3 비상계엄'의 영향으로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이날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의 메시지는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발언을 보자.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구축된 이후 지난 30여년 간 우리 산업은 기업이 앞에서 달리면 정부가 뒤에서 밀어주는 전략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산업경쟁 전면에 나서는 주요국 사례를 볼 때, 이러한 과거의 성장 방정식을 고수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당시 모두발언과 안건 등을 종합하면, 정부는 산업정책의 궤도 수정을 천명했다. 미국, 중국처럼 산업정책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뒤에서 밀어주는 '서포터'가 아닌, 기업과 함께 달리는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발언에도 이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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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가 아닌, 플레이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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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산업정책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6개월'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 부재(不在)는 단순히 6개월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산업정책의 큰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주요 선진국과 달리 시장의 힘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몇 번의 변곡점은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6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주재 산업경쟁력강화회의가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만들었다.
당시의 고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세계 경제의 패권 경쟁도 부각되던 시기다.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신설된 것은 주력업종의 중장기 경쟁력을 높이고, 단기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기업 구조조정으로 쏠렸다. 제1회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의 안건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이었다. 현대상선 정상화, 한진해운 구조조정이 당면한 과제였다.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져 2022년 12월까지 개최됐다. 마지막 회의 안건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였다.
지난해 11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약 2년 만에 재가동되면서 당면 과제 외에 중장기 산업구조 개선에도 힘을 실었다. 이를 위해 6명이던 장관급 참석자는 11명으로 늘어났다. 산업구조 개선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산업정책은 '12·3 비상계엄'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에 사로잡혔다.
탄핵 정국에서도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열린 회의에선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등 산업정책이 나왔다. 글로벌 과잉 공급 상태에 놓인 석유화학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면서 사업 재편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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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등 거치며 산업정책도 동력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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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산업정책은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힘을 받지 못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통상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산업정책을 펼칠 힘이 부족했다.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만 하더라도 온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제로 탄핵 정국에선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경제관계장관회의 등과 함께 열렸다. '선택과 집중'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월부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민관 합동 회의로 확대됐지만, 이후 나온 대책은 '한 방'이 부족했다. 석유화학산업 후속대책은 아직 무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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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IMD 국가경쟁력 순위/그래픽=이지혜 |
지난 17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는 이러한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7계단 떨어진 27위를 기록했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라는 취지로 이뤄지는데, 세부 항목인 기업 효율성 평가에서 69개국 중 44위를 차지했다.
해당 평가의 상당수가 설문조사에 기반해 매년 신뢰도 문제가 제기되긴 하지만, 주력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제 공은 새 정부로 넘어왔다. 이재명 정부는 '진짜 성장'의 3대 전략 중 하나로 기술주도성장을 내세운다. 미래를 선도할 전략산업을 키우고 기술 패권 경쟁과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취지에서다. 전략산업으로는 AI(인공지능), 바이오, 문화, 방위 산업 등을 제시했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은 "전통 산업에서 엄청난 구조조정 압력과 신산업 창출 압력까지 있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민간이 주도하면 안 된다"며 "정부가 첨단기술의 패권 전략을 잘 세우고, 기업들과 소통해야 하는 때가 왔다. 이는 세계적 방향성과 부합한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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