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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떨리는 손으로 현금을 뽑아 봉투에 넣고, 식장 앞에 앉아 있는 낯선 분에게 건네곤 했다. 수북이 쌓인 봉투를 열고, 돈을 세고, 분류하고 집계하는 것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당사자에게 메신저를 통해 축의금을 직접 송금하는 편이다. 빈자리에 앉고 보니 신부 측 하객석이었다. 주례 기준으로는 왼편, 하객 입장 기준으로는 오른편이다. 신부가 레드카펫을 따라 입장하는 위치와 일치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논리가 이해됐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의 대화에 따르면, 결혼이 무척 행복해보이는 신부는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 제자리에 앉았다면 듣지 않았을 불필요한 고급 정보를 알게 되어 피식 웃음이 났다.
예식은 경쾌하게 흘렀다. 신부 부모가 성혼선언을 하고, 신랑 부모는 덕담을 한다. 신혼여행에 컵라면을 꼭 챙겨가라는 생활형 지혜의 말씀을 주신다. 신랑이 노래를 부르고, 신부가 마음의 편지를 낭독한다. 주례는 없었다. 요즘 결혼식의 달라진 풍토로 보인다. 반강제로 사랑의 유효기간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였던, 엄숙하고 근엄한 결혼식의 시절을 지나, 스스로의 언어로 약속을 나누는 참여형 축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주례사는 다 어디로 간 걸까. 한때 결혼식의 중심엔 늘 주례와 주례사가 있었다. 은사, 대학 교수, 사장님, 지역 유지 등 명망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인륜지대사이며…"로 시작하는 훈화조의 연설을 했다. 그 말들에서 재미과 교훈을 기대하는 이는 드물었다. 예식이 처음인 신랑 신부는 정신이 없었고, 하객들은 지루했다. 즐겁게 웃던 사람들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닌' 긴 주례사에 적의를 숨기지 못했다. 일동 박수는 감동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끝난 것에 대한 집단적 안도의 표현이었다.
가을에 결혼을 준비 중인 지인에 따르면, 요즘 예식은 25분 예식과 25분 촬영이 기본 구성이다. 이 빠듯한 시간 안에 감동과 효율을 모두 담으려면, 제일 지루한 순서부터 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주례사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애초에 주례는 유명인사가 맡기에 적합한 역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아름다운 주례사처럼 아름다운 가정을 꾸렸을까. 광야를 달리는 게 제 일이었던 말은 마굿간 사정을 알 리 없다. 외적 성취를 위해서는, 사랑을 나누고, 그 약속을 지키고, 가정을 꾸리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세상이었다.
결혼식도 시대를 반영한다. 주례 없이 결혼하는 시대를 산다는 건, 더 이상 축복을 내려주는 목소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어 맺는 약속보다, 주인공들이 각자의 말로 시작하는 서약을 더 존중하게 된 시대를 환영한다.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