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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내 이름, 고운은 순우리말이다. 곱게 살라는 의미로 아빠가 지었다. 팔십년대 끝자락엔 순우리말 이름이 유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 보라는 말에 이상하게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애가 나 말고도 늘 여럿이었다. 엄마는 나를 ‘이슬’이나 ‘빛나’로 부르고 싶어 했지만, 아빠의 고집 덕분에 나는 고운이 됐다.
어릴 땐 한자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심오한 의미를 품은 이름들이 멋져 보였다. 게다가 고운 삶이란 꿈 많은 어린이에겐 그리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이름에 맞춰 그럴듯한 한자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글자도 없었다. 높을 고에 구름 운을 써서 높은 구름이 되는 것보단 그냥 고운인 게 나아 보였다.
가끔 이름을 바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본인이 졸라서 그러기도, 철학관에 갔다 온 부모님에 의해서 그러기도 했다. 사주에 부족한 기운을 보강하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 더 잘 살게 된다고, 뭣도 모르는 애들끼리 그런 얘길 했다. 그럴 때면 내 순우리말 이름은 내 인생과 어떤 관계일지 궁금했다.
어쩔 땐 내 이름이 너무 시시해 보였다. 내 안에 샘솟는 꿈을 담기에 고운은 너무 작고 연약한 이름 같았다. 종종 애들이 놀린답시고, 나를 ‘안 고운’으로 부르는 것도 못마땅했다. 게다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이고운 할머니’로 불리는 상상을 하면 너무 부끄러웠다. 왜 아빠는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하지 못했을까, 좀 더 평범한 이름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에 아주 도시적이고 중성적인 이름을 부러워했다.
첫딸의 이름을 고운이라 지었던 아빠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엄마를 만날 때까지 그저 외롭고 고단했던 그의 인생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을 무렵에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막막한 시간을 거쳐 마침내 가족을 만난 아빠가 세상에 처음으로 나를 초대했을 때, 자신과 달리 딸은 어떤 고생도 하지 않고 그저 ‘곱게만 살았으면’ 해서 나는 고운이 됐다. 내 이름은 아빠의 기도 같은 거였다. 동시에 그의 바람이자, 다짐이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실제로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 속에 선명하게 남은 앳된 아빠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의 나보다 열살은 넘게 어렸던 그의 마른 어깨와 해사한 얼굴. 진지해질 때면 늘 미간에 깊은 주름이 고이는 아빠는 아마 내 이름을 지을 때도 그 표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나를 고운이라 불렀을 때 그는 그저 기뻐 웃었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나를 처음으로 고운이라 부르는 어린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 어디서라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는다. 누구보다 인생의 풍랑에 대해 잘 알았으면서도, 딸이 그저 곱게만 살아가길 바랐던 그의 간절하고 순진한 기도가 늘 나와 함께하니까.
누군가의 이름을 들을 때면, 저 이름은 어떤 마음으로 지은 것일까 생각한다. 각자의 이름이 기도라면, 우리는 누군가의 간절하고 소중한 기도로 서로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곱게 살아가길, 행복하길, 찬란하길….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이름이 없다. 같은 이름도 결코 같지만은 않고, 다른 이름도 그리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고운 할머니’로 불릴 날을 상상한다. 백발에 등이 굽은 나를 누군가 그렇게 불러준다면, 아마 마르고 앳된 아빠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부를 때, 나는 그의 오랜 기도를 들을 것이다. 어쩌면 주책없이 얘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평범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세상에 초대했는지, 그 마음과 함께여서 내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이런 상상을 듣는다면, 아마도 그는 ‘고운아, 됐고 전화나 좀 해라’라며 웃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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