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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사면되지 않는다면 그의 다큐멘터리는 또 나온다 [김도훈의 하입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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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사면되지 않는다면 그의 다큐멘터리는 또 나온다 [김도훈의 하입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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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치 다큐멘터리 전성기

편집자주

김도훈 문화평론가가 요즘 대중문화의 '하입(Hype·과도한 열광이나 관심)' 현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영화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 중 한 장면. 영화로운형제 제공

영화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 중 한 장면. 영화로운형제 제공


다큐멘터리 만드는 게 쉬워졌다. 아니다. 이렇게 썼다가는 만드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다. 다시 쓰자. 다큐멘터리 만드는 게 수월해졌다. 같은 소리 아니냐고? 다르다. 쉽다는 건 객관적인 표현이다. 난도가 낮다는 소리다. 수월하다는 건 주관적 표현이다. 어려울 수 있는 일이 더 순조롭게 풀린다는 소리다. 여전히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불평하는 독자가 계실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 쉽다를 수월하다로 바꾼 이유는 그저 욕을 덜 먹고 싶어서다. 다 밝혀버렸으니 욕을 덜 먹는 건 이미 불가능해졌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게 쉬워진, 아니 수월해진 이유는 디지털 장비 덕분이다. 필름으로 만들던 시절에는 적어도 1억 원 이상 제작비가 들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도 촬영이 가능하다. 수천만 원 정도로도 만들 수 있다. 자료 화면도 디지털 아카이브화된 덕에 확보하기 편해졌다. 극장 개봉이 필수도 아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로 공개해 수익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좋은 시절은 없었다.

영화 '다시 만날, 조국' 중 한 장면. 앳나인필름 제공

영화 '다시 만날, 조국' 중 한 장면. 앳나인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 목적은 분명하다. 감춰진 진실을 알려 대중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 없이 위안부 문제 공론화는 삽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을 것이다. ‘낮은 목소리’는 자원봉사와 후원금 등으로 제작됐다. 그런데도 감독은 7,800만 원 채무를 떠안았다. 잔여 빚은 2012년 ‘화차’ 성공으로 상환했다. 빚을 갚는 데 17년이 걸렸다. 하고 싶은 말을 하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빚 독촉에 시달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채무는 많아야 780만 원 정도일 것이다. 제3금융권에서 빠르게 당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쯤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성기를 맞이했어야 옳다.

숫자로 따지자면 2025년은 독립 다큐멘터리, 그것도 정치 다큐멘터리의 전성기가 맞다. 올해 개봉한 영화는 ‘다시 만날, 조국’, ‘압수수색 : 내란의 시작’, ‘하보우만의 약속’, ‘힘내라 대한민국’, ‘준스톤 이어원’이다. 굳이 각 영화 주제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제목부터 화끈하다. 만든 이유도 화끈하다. 계엄 이후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다. 인간은 간사하다. 목적이 분명해도 채무를 떠안을 짓은 하지 않는다. 다행히 제작비는 낮아졌다. ‘그대가 조국’(2022)이 30만, 2024년 ‘건국전쟁’(2024)이 117만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에 대한 기대는 커졌다. 더는 집 팔고 나앉을 짓은 아니게 됐다는 소리다. 좌파도 우파도 똘똘한 한 채가 가장 중요한 시대이므로 누구도 그걸 잃을 짓은 하지 않는다.

영화 '준스톤 이어원' 포스터. 블루필름웍스 제공

영화 '준스톤 이어원' 포스터. 블루필름웍스 제공


다행히 2025년 개봉한 정치 다큐멘터리 성적은 좋은 편은 아니다. 또 ‘다행’이라고 말하려니 또 욕을 먹을 것 같다. 나는 20년간 영화평론가로 일해온 덕에, 아니 탓에 관련된 사람을 꽤 알고 있다. 일단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은 어쨌든 세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그 짧은 시간에 영화라는 걸 만들어 심지어 극장에 걸기까지 했다. 필름 한 장 한 장 잘라 붙이던 시절이 아니라 가능했지만 실행력과 속도감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준스톤 이어원’의 3,500명이라는 관객 수는 살짝 민망하다. 그래도 이준석 득표율에 어느 정도 공헌은 했을 것이다. 총 득표수가 291만이니 0.12%는 된다.

지금까지 개봉한 정치인 다큐멘터리 숫자를 정리해 봤다. 이승만 두 편, 박정희 한 편, 김대중 한 편, 노무현 한 편, 노회찬 한 편, 문재인 한 편, 조국 두 편, 이준석 한 편이다. 누가 남았나 생각해 봤다. 그럴 만한 위인이 없다. 다행이다. 만드는 사람들 애정이 관객의 애정보다 너무 앞서 나가는 바람에 다소 느끼한 정치인 다큐멘터리 열풍도 멈출 때가 됐다. 아니다. 이재명이 남았다. 다만, 그 영화는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나올 것이다. 잘못 생각했다. 조국이 사면되지 않는다면 그는 아마도 세 번째 영화를 갖게 될 것이다. ‘그대가 조국’, ‘다시 만날, 조국’에 이은 제목은 ‘아직도 조국’, ‘기다리는 조국’, ‘언젠가 조국’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중 무엇을 쓰시더라도 저작권은 주장하지 않겠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