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국내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외부 창작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 개막도 못 했을 거예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소재로 한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를 제작한 김언 더줌아트센터 피디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창작산실)의 지원을 받아 지난 2월 초연 무대를 올릴 수 있었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26차례 대본을 수정한 작품은 완성도 측면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으며 ‘2024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됐다. 창작산실에 선정되면 창작 뮤지컬의 경우 최대 2억5천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김 피디는 “작은 뮤지컬의 경우 투자사가 없다면 아무리 이야기가 좋아도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창작산실 같은 외부 지원 제도가 좀 더 늘어나면 창작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극단 오징어 제공 |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영문 제목 ‘메이비 해피 엔딩’)이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 6관왕을 거머쥔 데에도 이러한 외부 창작 지원이 보탬이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으로 초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란문화재단은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의 어머니인 워커힐미술관 설립자 고 우란 박계희씨의 뜻을 이어받아 2014년 설립된 비영리재단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재단 설립 첫해 심사를 통해 지원 사업 대상에 선정됐다. 이후 2년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초연과 미국 뉴욕 리딩(낭독) 공연까지 성사시키며 글로벌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2020년 3연부터는 씨제이이엔엠(CJ ENM)이 제작 바통을 받아 지난해 5연까지 이어왔다. 초연 때 250석 소극장에서 시작했던 작품은 3연부터 500석 중극장으로 확대 개막하며 무대 장치와 디자인 등 시각적 효과를 보강했다. 이후 엔에이치엔(NHN)링크가 투자사로 참여해 지난해 11월 개막한 브로드웨이 공연과 오는 10월 개막 예정인 국내 6연에 투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극본과 음악을 함께 만든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 이른바 ‘윌-휴 콤비’의 데뷔 자체부터 창작 지원의 성과다. 콤비의 2012년 뮤지컬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는 20일 개막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의 창작 지원 사업을 통해 발굴된 작품이다. 윌 애런슨은 2008년 딤프가 창작을 지원한 ‘마이 스케어리 걸’로 처음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했고, 그해 창작뮤지컬상까지 수상했다.
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극본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박천휴 작가(왼쪽)와 공동 작업자 윌 애런슨이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
뮤지컬계에선 ‘제2의 어쩌면 해피엔딩’이 나오려면 소규모 창작 뮤지컬에 대한 지원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극장 대관료와 배우 개런티가 점점 올라가면서 대형 극단이 아닐 경우 투자자가 없으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는 게 업계 사람들의 설명이다. 작은 뮤지컬이 초연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초연에 집중된 지원 제도를 재연 이후로도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개막한 창작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는 한국 뮤지컬 최초로 김소월의 시를 활용해 화제가 됐다. 이 작품 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토리움 우수스토리’로 선정된 뒤 ‘스토리움 우수스토리 매칭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초연을 할 수 있었다. 극단은 내년 재연 무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강선 스튜디오 반 대표는 “초연 뒤에 재연 일정을 잡기 위해 외부 투자나 지원책을 알아보고 있다”며 “지원책이 대부분 초연에 맞춰져 있어 재연 이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의 김언 피디도 “현재 재연을 준비하고 있다. 극장 대관 등이 어려워 이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강화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창작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쇼케이스가 열리고 있다. 스튜디오 반 제공 |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으로 작은 창작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특히 젊은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을 점점 늘려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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