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소버린(자주) AI' 강력 추진 의지 표명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 기술 논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술 주권'을 외치며 국가의 명운을 건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막대한 비용과 기술 격차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맞선다.
"소도 버린 AI를 기계적으로 따라야 하는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도 중화의 대의를 저버린 야만의 행태라 폄훼했던 자들이 있었다"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를 넘어, 안보, 경제, 철학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거대한 담론이 선명한 힘의 충돌을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기술 주권'을 외치며 국가의 명운을 건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막대한 비용과 기술 격차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맞선다.
"소도 버린 AI를 기계적으로 따라야 하는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도 중화의 대의를 저버린 야만의 행태라 폄훼했던 자들이 있었다"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를 넘어, 안보, 경제, 철학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거대한 담론이 선명한 힘의 충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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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AI'를 가져야만 하는가
소버린 AI 옹호론의 근간에는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 자산'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결정짓는다고 믿는다.
가장 강력한 논거는 단연 '안보'다.
이들에게 소버린 AI는 외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기술적 독립을 의미한다. 글로벌 빅테크의 AI 플랫폼에 국가의 핵심 인프라와 데이터를 맡기는 것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의 '키'를 남의 손에 쥐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다. 미·중 갈등 격화 시 특정 국가의 AI 서비스 접근이 차단되거나, 미국의 '클라우드 법'처럼 해외에 있는 데이터까지 자국 법에 따라 제출을 요구받는 상황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닌 현실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 쌀이 많으니 농사를 포기하자"는 비유를 든 것도 식량 주권처럼 AI 주권 역시 국가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을 분명히 한 것이다.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착각이며, AI는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운영체제(OS)'이기에 반드시 자체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의 미래적 측면에서 '부품'이 아닌 '플랫폼' 설계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봐야 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소버린 AI는 '미래 산업 생태계의 설계도'와 같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철저한 비주류다. AI 반도체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냉정하게 말해 AI 시대의 '부품 공급자' 역할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결국 진정한 부가가치는 반도체라는 '도구'를 어떤 '서비스'에,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플랫폼과 모델에서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소버린 AI가 위력을 발휘한다. "AI 반도체 지원의 시작과 끝은 소버린 AI 지원"이라는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자체 AI 모델과 서비스가 활성화되어야만 국내 AI 반도체의 강력한 수요처가 생기고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와 경험이 다시 더 나은 반도체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실행-평가-재훈련`으로 이어지는 AI의 핵심 피드백 루프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기술의 소비자로 남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실용적인 기술 관점에서도 자체 모델의 필요성은 제기된다.
한 개발자는 "TPS(초당 처리량)와 Latency(속도)는 조상님이 받아주냐?"는 우스갯소리를 통해, 대규모 상용 서비스에서 요구되는 안정성과 속도를 글로벌 빅테크의 API 호출만으로는 결코 맞출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결국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외부 AI를 쓰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으나,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 결국 비용, 속도, 안정성 문제로 자체 모델 혹은 직접 통제 가능한 오픈소스 모델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AI가 단순 정보 검색을 넘어 복잡한 추론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시대로 진입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령 소버린 AI 프로젝트가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 논객은 "생산성 낮은 곳에 투기하고 사회에 해악까지 미치면서 돈을 태우는 나라라면 차라리 AI에 태우라"고 역설한다. 수십조 원의 유동성이 비생산적인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현실과 비교하면 AI에 대한 투자는 실패하더라도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 경험, 기술 데이터 등 미래를 위한 무형의 자산을 남긴다는 것이다.
실패 과정에서 성장한 엔지니어들이 글로벌 기업에 진출해 외화를 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는 파격적인 시각이다. 무수히 많은 실패의 역사에 세워진 현재의 글로벌 빅테크 제국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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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 AI'를 쓰는 것이 현명한가
소버린 AI 반대론은 '장밋빛 청사진'보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막대한 비용, 기술 격차, 그리고 과거의 실패 경험이 그 핵심 근거다.
가장 근본적인 장벽은 '돈'과 '규모'다.
일론 머스크가 1.2GW의 전력을 쓰는 40만 GPU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상하고, 빅테크들이 수백조 원을 투자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의 투자는 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 스타게이트 출범하는데 한국은 그 돈을 모두 제공할 수 있나? 결국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
"미국에 좋은 좋은 모델 많은데 되도 않게 한국에서 만들어봐야 누가 쓰냐"는 냉소는 이러한 압도적인 격차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자본의 문제를 넘어, 전력망, 인프라, 부지 등 국가 기반 시설 전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대한 과제다.
여기에 고질적인 'K-실패'의 트라우마, 특히 '관치 기술'에 대한 깊은 불신도 자리하고 있다. 과거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아래아 한글' 표준화 시도, '국산 OS 개발' 등 수많은 'K-소프트웨어' 프로젝트들이 시장의 외면 속에 실패로 끝났던 트라우마다.
이러한 경험은 정부가 기술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낳았다. 특히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두 차례나 유찰된 것은 특정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낡은 사고방식'이 시장에서 더는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날카로운 지적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지만, 정권 교체만으로 모든 것이 일변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해도 AI 혁신을 이끌 인재와 생태계가 없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한 전문가는 "인재가 떠나는 이유는 보상이 낮아서가 아니라 연구와 창업,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자유와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단순히 인재 '양성' 목표치를 내세우는 '양병설'에서 벗어나, 글로벌 S급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싶게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지옥의 워커홀릭 천국이자 세대 갈등의 정점, 나아가 죽음의 빵공장이 여전히 쌩쌩 돌아가는 피의 기업가들에게 지상천국이다. 결국 한국의 젊은 인재들조차 기회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현실이다. 외국인 인재 유치는 요원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정권은 교체됐다지만 정부가 R&D 예산을 예고 없이 삭감하는 등의 '폭력적 행동'이 이미 벌어진 역사로 박제된 상태에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쌓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합하자면 반대론의 핵심 철학은 '선택과 집중'이다. "인터넷을 만드는 사람이 돈을 벌었나, 페이스북을 만드는 사람이 돈을 벌었지"라는 비유처럼, 모든 것을 직접 만들려 하기보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AI 모델을 '잘 활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주장이다.
기술적 열등감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 관점의 전략적 판단이다. 이들은 자체 LLM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기보다, 그 자원을 활용해 의료, 법률, 제조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도메인에 특화된 맞춤형 AI, 서비스 AI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AI를 고성능 부가가치 소프트웨어로 규정하는 것은 소버린AI 찬성론자들과 닮았다. 다만 AI를 지역별 장막을 올려 공방을 벌이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옛날 포털 사이트 시대에는 구글의 공습에 네이버가 한국 시장에서 버틸 수 있었고, 혹은 이러한 전쟁이 '가능'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한국어라는 언어의 장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AI 시대는 언어, 문화, 철학 등을 100%는 아니어도 과감하게 무시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무리하게 쩐의 전쟁을 벌이지 말고 글로벌 운영체제인 AI 제국 질서에 편입되어 대국인 명나라를 사대, 소중화의 기치를 챙기며 주변 국가보다는 비교우위를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실속론이 힘을 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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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봐야 할 지점
소버린 AI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최근 AI 기술 트렌드를 명확히 살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먼저 AI 기술 개발의 트렌드다. 최근 AI 기술은 무조건 큰 모델(LLM) 경쟁에서 벗어나,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작고 효율적인 모델(SLM)을 여러 개 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막대한 자본 없이도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준다. 이는 '크게' 만드는 경쟁이 아닌, '현명하게' 만드는 경쟁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한국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분석이다.
고립이 아닌 연대에 주목해 '오픈소스'와 'AI 외교'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가 유럽 각국의 컴퓨팅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EuroHPC'의 지원으로 탄생했듯, 개방과 연대는 이제 필수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이 Qwen(모델), SG Lang(서빙 프레임워크) 등 AI 개발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강력한 오픈소스 생태계를 구축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큰 위협이자 교훈이다. 우리 역시 고립된 개발을 넘어, 자체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국내외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우리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AI 외교'에 나서야 한다.
한편 국내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상반된 전략은 우리가 처한 딜레마와 해법을 동시에 보여준다.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완전한 기술 주권을 추구한다면, 카카오는 자체 모델과 외부 최고 성능 모델을 결합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택했다. 이는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 아니라 분야와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전략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이 유효함을 시사한다.
물론 카카오 카나나 등에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지만, 멈추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엑사원을 내세운 LG그룹의 승부수는 하드웨어 오프라인 데이터를 가진 거대 기업이 얼마나 기민하고 민첩하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로 볼 수 있다. 역시 체크해야 할 대한민국의 소중한 AI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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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축, AI 독립국 연대의 중심으로
소버린 AI 논쟁의 종착점은 'All or Nothing'의 선택이 될 수 없다. 국방·안보 등 국가 존립과 직결된 핵심 영역에서는 타협 없는 기술 주권을 추구하되, 나머지 방대한 상업·민간 영역에서는 최고의 글로벌 도구를 활용해 혁신을 극대화하는 유연한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축을 시도할 이유가 있는 이유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특정 기업이나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양질의 공공 데이터 개방, 창의적 인재 양성, 그리고 중소·스타트업도 자유롭게 AI를 실험할 수 있는 컴퓨팅 인프라 지원과 같은 '토양'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은 '가장 신뢰받는 AI(Trusted AI)'를 국가 브랜드로 삼아, 우리와 같이 기술 주권을 고민하는 다른 중견국들과 'AI 독립국 연대'를 형성하고 그 중심에 서는 비전을 그려야 한다. 이는 미국의 자본이나 중국의 규모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으로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담대한 길을 찾는 여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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