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G7 및 초청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비판적으로 볼 순 있다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이유가 뭐예요?"
과거 한 행사장에서 만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정부 공직자가 본보 기자에게 이같이 물었습니다. 명분을 떠나 유엔 헌장의 무력사용금지 원칙을 위반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건 러시아인데 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자초했다"는 말이 한국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끈 진보 정당에서 나오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승인으로 북한의 남침을 겪은 한국에서 이 같은 시각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이었습니다.
'셰셰' 논란만이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향을 두고 국제적으로 파장이 컸던 건 2022년 유세현장에서 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관련한 발언이었습니다. "정치 초보가 나토 가입을 하려고 해 러시아의 침공을 자초했다"는 취지의 발언은 대한민국을 위해 6·25 참전을 결정한 서구 선진국들에겐 충격이었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크리스천 데이비스 한국특파원은 자신의 '엑스(X)' 계정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주기 한 서유럽 국가의 문화원에서 개최한 세미나 전후로 "한국은 식민지배 피해와 전쟁 피해 경험 모두 있는데도 왜 우크라이나에 비판적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외교행보 주시하는 국제사회 속 불거진 '나토 불참론'
이 같은 목소리는 이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 기조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주시하는 서유럽 국가들의 우려를 반영합니다. 모든 국가는 국익 중심으로 실용외교를 펼칩니다. 하지만 이 '국익'이 장기적 가치 및 국제질서에 기반하느냐, 아니면 단기적 경제이익이나 역내 안정성에 기반하느냐 등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죠.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아울러 '유사가치 협력국'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세계 각국이 이재명 정부의 방향 이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남미의 한 사회주의 국가 공관은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성사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최근 고위직 출신을 공관장에 임명했다고 하죠.
이처럼 이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를 놓고 세계 각국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에서 새삼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선 전부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며 주요 7개국(G7)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하나의 관행이 된 참석…'눈에 띄는 불참'
나토는 미국과 유럽국 주도의 집단안보기구입니다. 회원국들의 평화유지 및 국가 안보 보장을 하는데 정치적·군사적 수단을 동원합니다. 한국이 나토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시작한 건 2005년으로, 지난 2014년에는 나토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 작전에 파견단을 보내며 협력하기도 했죠.
간헐적이었던 파트너십은 2022년 나토·IP4(인도·태평양 4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례화됐습니다.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정상이 참석하는 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처음이었습니다. 경제안보와 인권, 기술분야 협력 등을 논의하기 시작한 한국은 나토 정상회의가 있을 때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국가로서 지역 안보문제에 대해 나토와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 찬성했을 때도 반대여론이 있었습니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안보기구에 참석하는 것은 동북아에서의 진영구도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러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나토 정상회의가 더 이상 지정학적 기능이 아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창구가 된 점 △사이버 안보와 식량 안보 등 지정학적 경계를 뛰어넘은 안보 문제와 관련한 정보 공유와 협력이 필요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참석이 이뤄졌죠.
나토의 초청으로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일종의 관행이 지난 3년간 자리 잡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불참은 이런 정보공유에 대한 '태도변화'를 시사할 수 있습니다. '준비 부족'이라는 명분은 G7 정상회의 참석으로 설득력을 잃었으니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만큼, 한국의 불참이 '눈에 띌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러 나토 회원국들은 이달 초 이미 외교 경로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불참은 많은 메시지를 주게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시작된 '실용외교' 고차방정식 풀이…딜레마가 된 '과거 발언'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과거 국제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았던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발언들이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딜레마로 고스란히 자리 잡게 됐다는 것입니다. 네, 나토 정상회의에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과거 발언 등으로 자리 잡은 인식으로 인해 불참은 '외교 기조 변화'로 해석될 수밖에 없죠. 이러한 인식은 방위산업에서부터 사이버안보 협력까지 신흥안보 분야에서 공급망·기술 공조를 약속한 한국과 나토 회원국들과의 협력 수준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러관계가 개선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러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장 북러 군사동맹이 한국 안보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러시아가 펼치고 있는데, 왜 한국 스스로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으로 협상입지를 좁히려 하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이 나토 정상회의를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한러관계 개선의 촉매제가 되거나 북러 군사협력을 억지하는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외교안보 분야를 경시한다는 일부 비판을 불식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과의 관계 관리는 특사 파견으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습니다.
기존 협의체는 유지하되, 한국 안보에 중요한 주변국과는 외교적 접촉을 늘리는 형태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그 누구도 원수지지 않는' 외교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그래야 이 대통령의 과거 발언으로 나오게 된 외부의 '의심'과 '기대'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상의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 외교…'국익' 고려해 절제해야
사실 나토 정상회의를 이념적으로 비판하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돌발 발언이 없었다면 이 대통령의 참석을 둘러싼 논란은 이 정도로 거세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국가 정상과 집권 정당의 발언은 국가의 외교정책과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윤 전 대통령조차 미국이 제안한 '대만 유사시 워게임 시나리오' 협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주러대사는 정기적으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과 회동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낼 때,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 외무상도 아닌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대사에게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물밑에서 이뤄진 이러한 외교적 노력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중 사드 협의 이후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는데도, 과거 "중국은 큰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몽은 모든 아시아의 꿈"이라는 발언으로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를 '친중 정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죠. 정작 한국 정상 최초로 한미 정상 공동선언문에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평화'를 명시해 한미 포괄적 동맹 구조상 큰 움직임을 보인 건 문재인 정부였는데 말입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의 어려움을 직시한 문재인 정부는 '재검토'라는 우회로를 찾았지만, 결국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방해하는 가장 큰 세력으로 마주해야 했죠.
이처럼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습니다. 말 한마디가 만든 선입견 하나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외교환경을 크게 뒤흔들 수 있습니다. '실용외교'의 닻을 올린 이재명 정부도 이번 논란을 통해 말의 무게를 이해하고 한층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문지방 |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