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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에 끝까지 저항한 인디언 ‘검은 매’...NBA에 뿌리내린 저항정신의 힘 [추동훈의 흥부전]

매일경제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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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에 끝까지 저항한 인디언 ‘검은 매’...NBA에 뿌리내린 저항정신의 힘 [추동훈의 흥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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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저널]

‘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지방을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오리지널(original)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흥부전-109][오리저널-30]애틀란타 호크스

인디언의 땅,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
1767년,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 락아일랜드 인근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카-타이-메-셰-키아-키악(Ma-ka-tai-me-she-kia-kiak), 아메리칸 인디언인 사우크(Sauk) 족의 언어로 “태양이 비치는 날에 탄생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자란 곳은 미시시피 강변의 푸르고 너른 초원. 사우크 족은 이 강을 따라 옥수수와 콩을 심고, 사슴과 들소를 사냥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열 살도 되기 전부터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 정착민들과의 갈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의 심장엔 점점 분노와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우크 인디언 ‘태양이 비치는 날에 탄생한 사람’

사우크 인디언 ‘태양이 비치는 날에 탄생한 사람’


그는 15살이 되던 무렵 전투에 처음 참여하며 전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차례의 부족 간 충돌 속에서 그는 놀라운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주었고, 곧 사우크 족 내에서 가장 신망받는 전사로 자리매김합니다.

백인의 세계와 마주치다: 조약의 덫
그는 단순히 힘만 센게 아니라 리더십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조상의 땅에 대한 영적 유대와 문화적 자긍심을 강조하며, 점점 백인 정착민들과의 접촉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러던 1804년, 일대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사우크 족의 한 하위 지도자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미국과 토지 매매 조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조약이 부족 전체의 동의 없이 체결됐다는 점.

젊은 시절의 ‘태양이 비치는 날에 탄생한 사람’

젊은 시절의 ‘태양이 비치는 날에 탄생한 사람’


그 결과로 사우크와 폭스 족은 일리노이 강과 미시시피 강 사이의 비옥한 땅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우크 족의 리더였던 그는 이 조약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속임수에 의한 도둑질”이라고 규탄했고 그의 생애는 저항과 귀환의 투쟁사로 바뀌게 됩니다.


영국과의 동맹, 그리고 전쟁
1812년, 인디언의 땅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미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은 원주민 부족들에겐 생존을 위한 선택의 기회였습니다.

블랙호크

블랙호크


그는 영국과 손잡고 미국에 대항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젊은 전사들에게 백인들의 확장과 조약 체결의 허구성, 그리고 조상의 땅을 되찾기 위한 무장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미 정부는 계속해서 원주민들을 서부로 밀어냈고 힘을 잃은 그는 점점 ‘옛 땅으로 돌아가자’는 소망을 행동으로 옮길 날만을 기다리며 포기를 거듭했습니다.

잊혀졌던 전사의 귀환
1832년 봄, 드디어 그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미 65세의 노장이었던 그는 젊은이들과 가족들을 모아, 약 1000명 규모의 공동체를 이끌고 미시시피 강을 건너 고향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들로선 고향으로의 귀환이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침략행위로 간주합니다. 급기야 민병대와 정규군까지 동원해 강제 진압에 나섭니다. 대표적인 충돌 중 하나가 바로 스틸맨즈 런 전투(Steelman’s Run). 이 전투에서 인디언의 병력은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전술적 승리를 거두며 미 전역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짧은 희망에 불과했습니다.


블랙호크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블랙호크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결국 전쟁의 승세는 계속해서 미국 측으로 기울었습니다. 바드 액스 전투(Bad Axe River)에서 사우크 족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대부분의 추종자들은 학살당하거나 붙잡혔습니다. 노년이 된 그 역시 포로로 체포되어 미국 곳곳을 전시물처럼 순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당한 치욕은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낭만적 야만인’이라는 인물상으로 소비됐습니다. 그는 “용기 있는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됐습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검은 눈동자와 매서운 눈빛을 가진 그를 ‘블랙 호크(Black Hawk)’라고 불렀습니다. 앞서 그의 귀환 전쟁도 ‘블랙호크 전쟁’이라 불립니다.

책 ‘라이프 오브 블랙호크’

책 ‘라이프 오브 블랙호크’


1833년, 블랙 호크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서전 《The Life of Black Hawk》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는 미국 최초의 원주민 자서전으로 평가되며,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지막 날개짓 , 영면에 들다
블랙 호크는 포로에서 풀려난 후, 아이오와 주에 위치한 한 보호구역으로 돌아가 은둔하듯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백인들과는 거리 두기를 했지만, 가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나는 사우크 족이다. 그리고 나는 조상의 땅을 끝까지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블랙호크 자서전

블랙호크 자서전

1838년 10월 3일, 블랙 호크는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국 역사에서 조용히 지나갔지만, 그가 남긴 이름은 지역의 학교, 군사부대, 지역 도시, 스포츠팀의 이름으로 수십 년간 살아 숨 쉬게 됩니다.

농구에서 피어난 블랙호크의 정신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1946년. 중서부의 작은 도시들 모린(Moline), 락아일랜드(Rock Island), 데이븐포트(Davenport) 등 세 곳에서 하나의 농구팀을 만들기로 합니다. 이 지역은 바로 블랙 호크가 마지막 전쟁을 벌였던 일리노이 서부의 평원지역입니다. 그들은 그 강인하고 절개 있는 지도자의 이름을 빌려 팀을 “트라이시티즈 블랙호크스(Tri-Cities Blackhawks)”라고 짓습니다. 이 이름은 전쟁의 기억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이자 아메리칸 대륙의 저항의 상징이 됐습니다.

트리시티스 블랙호크스 로고

트리시티스 블랙호크스 로고

“우리는 블랙 호크처럼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농구장 위의 젊은 전사들은 그런 마음으로 코트를 달렸습니다.

세차례의 연고지 이전, 이름은 남다
밀워키 호크스 로고

밀워키 호크스 로고

1951년, 팀은 위스콘신주의 밀워키로 이전하며 이름을 간결하게 바꿉니다. 바로 밀워키 호크스의 탄생입니다. 한 인디언 전사의 이름에서 시작한 팀명을 가장 공격적인 맹수인 매로 변했습니다. 한편으론 아쉬움이 드는 지점입니다. 이후 다시 세인트루이스(1955), 그리고 애틀랜타(1968)로 연고지를 계속 이전했습니다. 하지만 호크스라는 팀명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 이름은 단지 한 도시의 상징이 아니라 아메리칸 원주민이자 이땅의 진짜 주인이었던 전사의 영혼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가르고, 사냥감을 향해 낙하하는 매가 코트 위를 누비는 선수들이 곧 전사였고, 그 정신은 블랙 호크로부터 시작되었기에 팀은 결코 그 유산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로고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로고

애틀란타 호크스 로고

애틀란타 호크스 로고

오늘날 애틀랜타 호크스(Atlanta Hawks)는 남부의 메트로폴리탄 도시에서 하이플라잉 덩크를 꽂으며 수천 명의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 속에는 단순한 로고와 마스코트 너머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땅을 위해 싸운 한 노전사의 신념과 명예가 서려 있습니다. 이러한 블랙호크의 정신은 어쩌면 잊혀질 수 있는 미국 대륙의 진짜 주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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