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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올랭피아'는 왜 그토록 충격을 주었을까? [休·味·樂(휴·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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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올랭피아'는 왜 그토록 충격을 주었을까? [休·味·樂(휴·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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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63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가 파리 살롱전에 '올랭피아(Olympia)'를 출품했을 때, 관객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고전주의의 이상미와 신화적 주제를 추구하던 보수적인 프랑스 미술계에서, 이 그림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마네는 이 대담한 작품을 통해 기존 미학을 해체하고 모더니즘의 서막을 알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무엇이 그렇게 센세이셔널했던 것일까?

언뜻 보면, '올랭피아'는 당시 살롱전에 출품되던 고전적 회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실내의 기대어 누운 여성 누드는 르네상스 시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한다.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부드러운 눈빛과 이상화된 육체로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런 아름다움이 19세기 프랑스 살롱 미술이 이상적으로 여긴 미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더 이상 그런 환상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예술이 신화나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올랭피아'의 가장 도발적인 요소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 비너스가 아니라 바로 그 시대 현실의 여성을 그렸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누드는 신화 속 여신의 형태를 빌려 표현되었지만, 마네는 이를 거부했다.

모델은 마네의 또 다른 문제작 '풀밭 위의 점심'에서도 등장했던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으로, 당대 파리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예술가이자 화가의 모델이었다. 그녀는 신화 속의 이상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실재 인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네는 올랭피아를 고급 매춘부로 묘사했다. 19세기 파리에는 부유층 남성의 후원을 받으며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삶을 누리던, 이른바 '드미몽덴(Demi-Mondaine)'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은 상류 사회 남성의 은밀한 밤의 세계에서 소비된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예술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된 적은 드물었다. 마네는 이 금기를 정면으로 깬 것이다.

올랭피아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 정면을 응시하며 관객의 시선을 거침없이 받아낸다. 이상화된 순수한 여성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대담하고 도발적인 시선은 당시 관객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 옆에는 고객이 보낸 꽃다발을 전달하는 하녀가 있고, 침대 끝자락에는 난잡함과 성적 자유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다. 이는 티치아노의 비너스 곁에 있는, 결혼의 충실함을 상징하는 작은 강아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올랭피아의 목에 걸린 검은 리본과 슬리퍼는 단순한 장식 물품이 아니다. 이것은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매춘부를 식별하는 시각적 코드였다. 당시 파리에서는 고급 매춘부들이 목에 검은 초커나 리본을 두르는 일이 흔했다. 벗겨질 듯 헐렁한 슬리퍼는 침실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는 성적인 자유분방함과 접근의 용이함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귀부인이나 부르주아 여성은 진주나 금목걸이를 두르고 격식 있는 단화나 단정한 부츠를 신었다. 당대의 관객은 그림 속에서 이런 노골적인 기호들을 인지했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마네는 회화적 기법에서도 관습에 도전했다. 그는 부드러운 붓질과 점진적 명암 표현을 배제하고 색과 색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했으며, 배경과 인물 사이의 깊이감을 억제했다. 이러한 평면적인 화면 구성은 당시 유럽 미술가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일본 판화 우키요에(Ukiyo-e)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쿠사이Hokusai)나 히로시게(Hiroshige) 같은 일본 작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했으며, 마네는 그 미학을 대담하게 자신의 화풍에 끌어들였다.

이렇듯, '올랭피아'는 주제와 표현 방식 모두에서 19세기 미술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올랭피아'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관객들은 그림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조롱했으며, 평론가들은 저급하고 추악하다고 혹평했다. 심지어 그림을 훼손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네의 예술은 점차 이해받기 시작했다. '올랭피아'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재평가되었고, 마네는 인상주의를 이끈 선두주자, 현대 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존경받게 되었다. 1890년, 프랑스 정부는 이 그림을 공식적으로 구입했고, 현재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때 충격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올랭피아'는 이제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