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투기와 헬기를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의 강구영 대표이사가 언론사에 직접 찾아가 대통령실과 관련된 보도를 무마한 정황을 뉴스타파가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올해 초부터 강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특정 직원에 대한 인사 특혜 의혹이다. 이 직원의 남편은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이다. TV조선이 남편 찬스 의혹을 취재하자, 강 대표가 TV조선을 찾아갔고 관련 보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 대표는 대선 다음 날인 6월 4일,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3개월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30일, KAI는 미국에 파견된 해당 직원을 국내로 복귀 발령냈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파견 1년 만에 복귀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강 대표는 2016년 공군 예비역 중장으로 전역한 후, 윤석열 대선 후보자 지지 모임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의 영남본부장을 지냈다. 그는 윤석열 정권 출범 후 KAI 사장에 임명됐다. 12.3 내란 주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측근으로 알려졌고, 취임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국회에서 공개된 KAI 대표의 TV조선 방문...이후 드러난 '방문 목적'
지난해 10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진 한 장을 제시하며 김용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질문했다.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군지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뒷모습만 나온 사진만 보고도 두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사진 속 인물은 강구영 KAI 대표와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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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원: 사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어요? 모르시겠습니까?
●김용현: 예, 본 것 같습니다.
○박선원: 잘 아시죠?
●김용현: 예.
○박선원: 그 다음 이 사람 누군지 아세요?
●김용현: 네 압니다.
-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중 박선원 의원-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질의응답(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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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두 사람이 수행원 없이 함께 이동했다. 업무 시간인데 어디로 가고 있었느냐”는 박 의원의 질문에 정 이사장은 “업무상 만난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행선지는 밝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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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기자-KAI 관계자 통화 녹취록에 담긴 '인사 특혜'
이들의 TV조선 방문 9일전, TV조선 기자가 KAI 관계자와 통화한 녹취록을 입수했다. 여기에서 TV조선 기자는 두 달 전 미국으로 파견된 직원에 대해 묻고 있었다.
해당 직원은 KAI 홍보팀으로 입사한 한 모 차장이었다. 한 차장은 지난해 6월경 KAI 미주지사로 파견됐다. 파견 전에는 홍보팀에서 수출기획팀으로 전보가 됐는데,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KAI 내부에선 '인사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KAI 관계자는 TV조선 기자에게 이례적인 '인사 발령'이라고 사실상 인정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TV조선 기자: 한 가지 좀 사례로 얘기 말씀드렸던 게 해외 주재원 발령이라고 하는데 그건 그 어떻게 된 건가요? 그분이 한○○이라는 차장님이신데 그 분이 (미주지사 발경) 해당 사항이 없는 부서에 계셨던 거죠?이날 KAI 관계자는 TV조선 기자에게 한 차장의 남편이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이란 사실까지 확인해줬다. 특혜 의혹 제기를 할 만한 유력한 단서를 확인해준 셈이다.
●KAI 관계자: 일단 이제 그 분이 들어올 때부터 경력으로 들어왔는데 아시겠지만 박근혜 정부 때인가 춘추관실에 있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홍보에 계셨는지 우리 회사도 들어와서 홍보 일을 했었거든요.
○TV조선 취재기자: 네.
●KAI 관계자: 작년인가 저는 잘 몰랐는데 미리 그 미주 수출팀 쪽으로 나갈 거라는 전제 하에 부서도 옮겼고, 모든 게 본인의 뜻대로 타이밍이 딱딱 맞아서 움직이니까. 또 보통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저렿게 쉽게 할 수 있나라는 허탈감이 있었겠죠? 그러니까 이제 좀 그런 아쉬운 소리들을 하고 불만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 TV조선 기자와 KAI 관계자의 통화 녹취록(2024.8.21.)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한 차장의 배우자는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관 출신 배 모 씨다. 배 전 행정관은 지난해 총선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에 출마했다. '명태균 게이트'를 촉발한 김영선 전 의원의 지역구가 바로 그곳이다. 배 전 행정관은 김건희 라인으로 알려진 김상민 전 검사와 나란히 출마했지만, 둘 다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김상민 전 검사는 국정원장 특보로 임명됐다. 공교롭게도 두 달 후에는 배 전 행정관의 아내 한 차장이 미국으로 파견을 간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실 출신 남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여러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어느 매체도 기사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TV조선 기자: 아 그렇군요. 근데 그 분이 그 뭐 남편이 청와대 계셨었 분이고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내용은 좀 확인된 게 있을까요?KAI 측과 엇갈리는 TV조선의 해명...돌연 복귀 발령
●KAI 홍보팀: 뭐 저도 들어서는 알고 있어요. 그런 분이 맞긴 맞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랬는게 그게 뭐 그걸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진짜 뭐 알 수는 없으나 심증적으로 그래서 그런 거 아니냐라는 의심을 하게 되는 거죠. 합리적 의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 TV조선 기자와 KAI 관계자의 통화 녹취록(2024.8.21.)
KAI 측은 뉴스타파에 ▲TV조선 방문은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업무상 방문이었다 ▲당시 TV조선에서 회사 관련 부정적 이슈를 취재하고 있었고, 이를 (강구영) 사장에게 보고했다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강 대표가 찾아가) TV조선 사장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명 이튿날 KAI 측은 추가 입장을 전달해왔다. ▲TV조선 외에도 채널A, 연합뉴스 등 언론사도 네트워킹 차원에서 방문한 바 있고 ▲(한 차장 파견은) 미주 수출 본부의 인사 수요에 따라 자격 요건을 갖추고 진행된 것으로 ▲특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당시 TV조선 담당 데스크에게도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이에 담당 데스크는 "취재기자가 데스크에 보고만 하고, 발제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보고 시점도, 강 전 사장의 방문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KAI 측의 로비를 받거나, 기사를 무마해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TV조선 데스크 : 그 (KAI) 사장이 찾아왔다는 건 저는 뒤늦게 그건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고, 그거랑 무관하게 우리가 ○○○ 기자가 그거를 취재하고 있었던 내용인 건 아는데, 그게 기사가 여물지를 않았어요. 기사라는 게 취재를 하다가 뭘 여물어야 내용을 쓰든가 말든가 하는데 그 정도까지 가지를 않은 거죠. ...우리 내부적으로는 그 보고가 오고 이게 당시에 소위 말하는 지라시랑 어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냥 발제도 안 한 시기랑..그 내가 나중에 그거를 인지한 시점하고는 훨씬 시차가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저기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그 무슨 뭐 로비를 하고, 묵살한다라는 그 논리로 하려면 이거 안 맞을 거에요.양측의 해명을 종합하면 담당 기자가 데스크에 취재 사안을 보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구영 대표가 TV조선을 직접 방문해서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설명을 한 게 된다. TV조선 데스크는 강 대표의 방문 사실도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방문 당일 강 사장이 TV조선 사장에게 특혜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면, 담당 데스크는 적어도 이날 방문 목적을 인지했어야 한다.
- TV조선 데스크와 뉴스타파 통화 녹취록(2025.5.8.)
양측의 해명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TV조선은 인사 특혜 의혹을 보도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지난달 KAI 측에 인사 특혜 의혹에 대한 반론을 요청하자, KAI는 지난달 30일에 한 차장을 국내 본사로 복귀시키는 인사 발령을 냈다. 복귀 날짜는 이달 30일이다. KAI 내부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강구영 대표는 대선 다음 날인 이달 4일 사의를 표명했다. 자신의 임기를 3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그러나 사의만 표명했을 뿐, 그는 현재도 프랑스 파리 에어쇼 참석을 위해 출국한 상황이다. 대표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의 지난해 연봉은 성과급까지 더해 총 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뉴스타파 이슬기 fellow-s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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