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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2025년 6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철탑에서 내려온 뒤 동료들과 인사하고 있다. |
그는 비쩍 마른 팔로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10초 남짓 깃발을 흔들다 힘에 부친 듯 잠시 멈추더니 곧 다시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30m 높이 고공 철탑에서 크레인을 타고 지상에 내려오는 2분 남짓, 그는 끝내 ‘금속노조’라고 쓰인 깃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25년 6월19일 오후 2시32분,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김형수가 고공농성 97일 만에 땅을 밟았다. 수염이 얼굴을 덮었고, 볼은 움푹 파였다. 땅에 도착해서야 깃발을 내려놓은 김형수는 약 20m를 걷는 데 5분이나 걸렸다. 부축을 받은 김형수는 온몸에 힘이 빠져 보였지만, 눈빛은 힘을 잃지 않았다.
김형수는 2025년 3월15일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노동자 손해배상 보복조치 철회,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에 올랐다. 그러나 원청인 한화오션은 노조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고, 사내 하청업체 대표 쪽과 협상해왔지만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한화오션 하청 노사가 의견 접근을 이룬 건 6월17일 오후였다. 연간 상여금 50%를 100%로 인상하는 것과 상용공 확대 및 취업 방해 금지, 산업재해 예방 활동 등의 내용이 잠정합의안에 담겼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6월18~19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쳤고, 찬성률 91.5%로 가결됐다.
하지만 김형수는 내려온 기쁨보다 앞으로 해야 할 싸움을 이야기했다. “2024년 임단협 투쟁이 1년2개월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교섭이 마무리될 때까지 원청 한화오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25년 교섭에서는 반드시 한화오션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겠습니다. 노조법 2·3조 개정도 필요합니다. 모든 노동자가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내려오지 못한 노동자들을 언급했다. “불굴의 의지로 529일간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박정혜 동지(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와 127일 동안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고진수 지부장(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에게 먼저 내려오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 동지가 땅을 밟을 때까지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이날 김형수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엔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외에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의원과 진보당 윤종오·정혜경·전종덕 의원이 참석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언주·김주영·민병덕·허성무·박해철 의원 등이 참석해 노조법 2·3조 개정을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제21대와 제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전 대통령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해철 민주당 의원은 “이제 남은 숙제는 국회”라며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관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창민 의원과 정혜경 의원, 허성무 의원은 크레인에 함께 올라 김형수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이날 고공농성장 밑엔 김형수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 수백 명이 동원됐다. 경찰은 철탑 및 반경 20m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국회의원 외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후 김형수가 내려와 기자회견을 하던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이를 막아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약 20분 동안 대치했다. 결국 김형수는 기자회견장과 약 5m 떨어진 곳에서 발언해야 했다.
김형수의 발언이 끝나고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김유철 지회장 발언이 진행되자 경찰 병력이 김형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다시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과 협의 끝에 김형수는 거통고조선지회 조합원들과 사진만 찍은 뒤 구급차를 타고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글·사진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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