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이시바 총리, 이재명 대통령의 '日 중시'에 화답…상호주의 관례도 깨고 주일한국대사관 행사 참석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주일한국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리셉션에 예고없이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 오른쪽으로 병풍이 눈에 띈다. 이 병풍에는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쓰여 있다. 1965년 12월18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조약 비준서 교환식에 사용된 병풍으로 한일 양국이 6폭씩 보관하고 있다. / 사진=뉴스1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열린 주일한국대사관 행사에 '깜짝' 등장한 것은 외교 관계의 상호주의 원칙을 넘어선 파격 행보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서울에서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한 기념행사에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로 영상 축사를 보냈지만 이시바 총리가 외교 관계에서 서로 급을 맞추는 관례를 깨고 직접 참석했기 때문이다.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전날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주일한국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리셉션에 예고없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기시다 후미오, 스가 요시히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대사관 행사에 일본 전현직 총리 4명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내각 서열 2위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과 3위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 4위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 나카타니 겐 방위상 등도 참석했다. 그만큼 일본 내각 차원에서 한일 관계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시바 총리는 리셉션 축사를 통해 "일본과 한국은 그동안 구축해 온 다양한 협력에 더해 출생률 저하, 인구 감소, 지방 활성화 등 공통과제를 서로의 지혜와 지식을 공유해 함께 풀어야 한다"며 "일한 협력의 지평을 더욱 넓히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교류의 바통을 확실하게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이 엄중해지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가 손잡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자"고 했다. 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앞으로 일한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아주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또 "일본과 한국이 서로 방문지 1위 국가인 것처럼 젊은 세대의 자연스러운 교류는 밝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며 "서로의 다양한 지혜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협력할 수 있는 분야, 나아가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분야도 수없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자리를 바꾸며 밝게 웃고 있다. / 사진=뉴시스 |
이시바 총리의 이날 깜짝 등장은 한일 관계 강화 의지는 물론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중시 메시지'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치권에선 대선 후보시절 일본에 강경 발언을 해온 이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과거 문재인 정부처럼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취임 닷새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보다 먼저 이시바 총리와 통화하고,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대신 미래지향적 협력 의지를 밝힘에 따라 일본 측의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 노선을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기반으로 주변국과 외교 관계를 설정하겠다고도 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시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일은) 마치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차이를 넘어 여러 면에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도 "양국 간 협력과 공조가 이 지역과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또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주한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서 영상 축사를 통해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양국은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외교 소식통은 "외교 관례와 격식을 중요시하는 일본에서 전현직 총리는 물론 내각 인사들이 총출동한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라며 "일본 내각이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일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글로벌 위기가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속에서 한일 양국의 이익은 공유를 넘어 전략적 이익이 합치되고 있다"며 "양국의 협력이 시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그동안 한일 관계에 대해 경제 협력과 과거사 문제는 별도 트랙으로 관리하겠다고 공언했고, 일본도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 입장이 없어 추후 과거사 문제를 두고 양국의 갈등이 촉발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이시바 총리가 역사 문제에 전향적이고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관련 이슈가 커질 것으로 보진 않지만 독도 문제 등은 매년 제기될 것"이라며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당장 해결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전략적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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