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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판 엘리제 조약을 맺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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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판 엘리제 조약을 맺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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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프랑스와 독일 ! 지금은 G7국가로서 양국간의 우애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으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두나라는 서로 앙숙 그 자체였다. 갈리아족 프랑스와 게르만족 독일은 중세 프랑크왕국과 합스부르크 왕국과의 충돌, 19세기 나폴레옹전쟁,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비롯하여, 20세기에는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며 적대시했다

그러던 두나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바로 ‘엘리제조약’ 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조약의 주역은 프랑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독일(당시 서독)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총리였다. 당시 드골은 72세, 아데너워는 87세였다.

1963년 1월 22일 ! 양 국가는 프랑스-독일화해협력조약(일명 엘리제 조약, Elysee Treaty)을 체결해 영구히 두 나라가 화해하기로 협정을 맺으며, 마침내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대사건이 일어났다. 물론 엘리제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협정 체결전 드골과 아데나워는 15번의 만남, 100시간 이상 토론, 40통의 서신 등을 통해 함께 양국의 미래를 향해 논의하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엘리제 조약을 살펴보면, 두 정상이 연 2회 정상회담, 분야별 장관들의 정기회담을 비롯하여 양국 청소년들이 교류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청소년 교류 관련해서는 독일.프랑스청소년사무소(FGYO)가 설립돼 1000만명 이상의 양국 청소년들이 화해와 협력관계를 토대로 활발하게 교류활동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프랑스-독일 공동역사교과서’ 이다.

왜냐하면 역사 교과서를 두나라가 공동으로 편찬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공동 역사교과서는 2003년도에 양국 청소년들이 화해와 협력, 미래를 위해서 공동의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제안을 했으며, 당시 양국 정상인 독일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 시라크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고 추진했다는 점이다. 또한 여기서 독일의 자세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가해국인 독일이 먼저 용서를 구하고 화해와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양 국가는 조약 체결 이후에도 끊임없는 노력과 실천이 이어지면서 엘리제 조약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엘리제조약 체결이후 양국가는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엘리제조약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독일이 통일이 된 이후에도 이 조약은 유지되며, 유럽연합(EU)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2019년에는 마크롱과 메르켈이 엘리제조약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1월22일에 아헨조약(Aachen)을 맺었는데, 이는 엘리제조약 2.0인 셈이다.


이제 눈을 돌려 대한민국을 보자.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해이다. 1998년 한-일관계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던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역사적인 선언은 선언에 그치게 되면서 선언의 정신이 이어지지 못했다. 최근 캐나다 G7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라고 했으며, 한일협력심화, 한-일 셔틀외교 복원 등에 양국 정상이 뜻을 모았다. 또한 일본도쿄에서 열린 6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이시바 총리는 “서로가 손잡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자”고 했다. 이제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인 ‘한일판 엘리제 조약’ 을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추진해 한일간의 힘찬 미래와 자라나는 양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새역사를 창조하는 위업을 이루도록 하자.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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