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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품듯 죽음도 품을 수 있다면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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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품듯 죽음도 품을 수 있다면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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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 l 키티 크라우더 글·그림, 이주희 옮김, 논장(2025)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 l 키티 크라우더 글·그림, 이주희 옮김, 논장(2025)




지금 가장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이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수상자인 키티 크라우더가 전시회를 계기로 한국을 다녀갔다. 선천성 난청인 그는 주의 깊고 세심한 관찰을 통해 부족한 청각 정보를 메워왔다. 그는 “대신 다르게 들어요. 목소리 뒤편에 있는 눈물까지도 들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책에는 인간의 의식 너머에 존재하는 상상력과 마법, 원초적 자연이 담기고, 신·죽음·두려움·관계 등 인간의 내면이 녹아 들어간다.



주제가 쉽지 않을 때 어떻게 독자를 귀 기울이게 할까? “그 안에 빛을 가득 담는 걸 좋아해요. 가벼움, 유머, 다정함 같은 것들이요.” 그의 책은 무거움 속에도 유머가 배어 있고 인간에게 따뜻한 신뢰를 드러낸다. 또 하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인물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이야기가 따라간다. 머리보다는 우연을 좇는 것을 예술가의 존재 이유로 드는 것이 납득이 간다. ‘메두사 엄마‘(2018) ‘내 친구 짐’(2024)처럼 그의 많은 책 제목이 주인공들의 이름인 것도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드러낸다.



그녀의 ‘들리는 것 넘어’를 더 보려고 죽음에 대한 그림책을 펼쳤다.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에서 죽음은 처음으로 자신을 환영하는 소녀를 만난다. 평안과 축복을 상징하는 종려나무의 초록 잎 가지를 든 소녀는 이제 더는 아프지 않다며 아름답게 웃는다. 소녀는 죽음과 놀이 친구가 된다. 죽음은 변화된다. 함께하는 시간을 지나, 소녀가 천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을 때, 죽음은 천사와 함께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수행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삶처럼 죽음 역시 즐거움과 외로움을 지녔다. 삶을 품듯 죽음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전작인 ‘나와 없어’(2022)를 떠올리게 한다. ‘나와 없어’에서 ‘나’는 엄마의 죽음 뒤 상실의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없어’는 ‘나’의 보이지 않는 친구이자 ‘낫싱’(nothing)의 의미이다. ‘없어’는 말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죽음은 부재이자 있음의 출발인 것이다.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는 슈베르트의 가곡이자 현악 4중주 14번인 ‘죽음과 소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음악에서는 그림책과 달리, 소녀가 자신을 지나가 달라고 빈다. 이 음악은 에곤 실레의 그림 ‘죽음과 소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진실’ 등 많은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그림책들에는 주요 색이 하나씩 설정된다.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는 주황색의 잉크가 흑과 백, 그리고 다른 채색 선들과 어우러져 죽음의 세계를 특별하면서도 따뜻한 석양빛을 머금은 공간으로 느끼게 한다. 그의 대부분 작품에 쓰인 색연필은 주변을 간섭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따뜻하다. 원화를 그린 종이는 하얀색이 아니라 형광 빛이 없는 미색으로 부드럽게 색을 발색한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죽음이 이런 모습이었기를 기도하고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 (전시는 알부스 갤러리 7월13일까지)



조은숙 그림책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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