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검찰개혁 시발은 국회의원 9명 불출마선언 [뉴스룸에서]

한국일보
원문보기

검찰개혁 시발은 국회의원 9명 불출마선언 [뉴스룸에서]

서울맑음 / 1.4 °
검찰개혁 한다면서 검사들 활용
예외 두기 시작하면 개혁은 실패
민주당이 모범 보이면 지지할 것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검찰개혁 5대 핵심 과제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검찰개혁 5대 핵심 과제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방안의 핵심은 검사들의 힘을 빼는 거다. 멀쩡한 사람도 검사만 되면 이상하게 변한다는 게 여권 강경파들의 인식이다. 수사권을 없애고 기소만 할 수 있도록 못 박으려는 것은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을 진짜 개혁하고 싶다면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게 있다. 검찰청을 떠난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을 막는 거다. 검사 경력이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검사들은 퇴직 후 진로를 고민하는 대신 기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 간부 출신, 그것도 특수부 검사였던 오광수를 대통령실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검찰을 잘 알아야 검찰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며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을 앉히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오광수는 보통 검사들과는 다르니 예외로 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검찰개혁은커녕 6일 만에 낙마했으니 확실히 다르긴 했다.

역대급 수사팀이 꾸려질 내란·김건희· 채상병 특검은 검사들이 수사를 주도한다. 검찰 간부 출신들이 특검보 자리를 꿰찼고, 검찰에서 윤석열 내란 사건과 김건희 의혹을 수사했던 검사들도 대거 특검에 합류한다. 무늬만 특검일 뿐, 검찰 수사와 다를 바 없다. 여권에선 검사들을 중용한 것을 두고 불가피한 상황이라 이번에는 예외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이재명 정부도 검찰개혁을 한다면서 급할 땐 검사를 찾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을 비판하면서 검사들에게 의지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다. 검사들을 동원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수사가 윤석열이라는 괴물과 수많은 정치검사들을 양산한 걸 잊은 듯하다. 불가피성으로 합리화하고 온갖 이유를 들며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원칙이 무너지고 개혁은 흐지부지된다.

검찰개혁을 외쳤던 게 표를 얻기 위한 레토릭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은 한동안 예외 없이 전직 검사들을 멀리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이 쓰는 전직 검사들은 검증됐으니 괜찮다거나, 잘 알고 지내던 검사니까 영입해도 된다고 얘기해선 안 된다. 그건 모두가 빨간 조끼를 입었는데 내 자식만 파란 조끼를 입었다고 우기는 격이다. 착한 검사도 있고 나쁜 검사도 있겠지만, 검사라는 정체성은 바뀌진 않는다.

그럼에도 전직 검사들이 정부기관과 위원회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어 우려스럽다. 불가피했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스텝이 꼬이기 쉽다. 검찰개혁의 진정성을 인정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민주당의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다. 백혜련 송기헌 주철현 양부남 박균택 이건태 이성윤 김기표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검찰 출신이 아니었다면 여의도 입성은 꿈도 못 꿨을 사람들이다. 검사 경력이 국회로 들어가는 통로로 인식되면 아무리 검찰개혁을 시도해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지울 수가 없다.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은 2020년 12월 검사가 퇴직한 후 1년 동안 공직 후보자로 출마하는 것을 제한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위헌 논란이 있더라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을 재발의해 통과시키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검찰 출신은 예외 없이 받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이 모범을 보이면 국민들도 지지할 것이다.

강철원 사회부장 str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