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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퀴어’. 누리픽쳐스 제공 |
윌리엄 에스(S). 버로스(1914~1997)는 1950년대 미국 반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된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다. 약에 취해 ‘윌리엄 텔’ 놀이를 한다고 아내 머리 위에 물컵을 올려놓고 총을 쐈다가 오발로 죽였을 정도로 지독한 마약중독자에,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던 동성애자이며, 마법과 주술에도 심취했다.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켜 평생 도망 다니고 떠돌며 엉망진창인 삶을 살았지만,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는 지금까지도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이유가 됐다. 그 뜨거운 추앙을 스크린에 새겨넣은 작품 두편이 25일 나란히 개봉한다.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퀴어’는 버로스가 창작을 시작한 1950년대에 쓰였다가 1985년에야 세상에 나온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0대 시절 이 책을 읽고 반한 구아다니노는 영화계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이 소설의 영화화를 꿈꿨다고 한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퀴어’는 버로스가 멕시코에 머물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는다. 버로스의 필명이자 영화 캐릭터인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돈 많은 한량이자 중년 게이로,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다 젊고 아름다운 남자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에 반한다.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앨러튼 앞에서 리는 사랑을 구걸하다시피 하며 점점 더 마약중독에 빠져들고, 둘은 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한다는 마약 ‘야헤’를 찾아 남미 밀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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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이키드 런치’. 앳나인필름 제공 |
언뜻 ‘퀴어’는 청량한 사랑과 반짝거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던 감독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중년 버전 같다. 사랑은 끝내 상대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갈망은 점점 더 어둡고 끈적해진다. 전작들처럼 미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화면에 갈망의 진한 밀도를 풀어넣는 건 크레이그의 묘하게 처연한 연기다. 그가 가진 모든 우월함이나 자신감이 태연한 젊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때의 극적인 낙차가 여운 짙다.
199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네이키드 런치’는 4케이(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34년 만에 처음 국내 정식 개봉한다. 버로스의 대표작인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며 ‘퀴어’와 일정 부분 대사나 상황이 겹쳐 비교해 보면 더 흥미롭다. 주인공 윌리엄 리(피터 웰러)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가문의 저주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파트너 목걸이 펜던트 모양이면서 주인공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지네의 상징성 등이 그렇다. ‘퀴어’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내 조앤과 소설 창작이 주요 모티브라는 점은 이 영화만의 차별점이다. 해충구제업자 리는 아내와 함께 해충약을 마약처럼 투약하다 실수로 아내를 죽인다. 그 와중에 그가 쓰던 타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바뀌고, 인터존이라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네이키드 런치’는 불연속적이고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원작 소설과 신체 변형의 기괴한 이미지로 가득한 크로넨버그 스타일이 맞아떨어진 작품이다. 벌레나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타자기, 이마에 총을 맞고 죽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아내, 동성애 장면의 섬뜩한 신체 변형 등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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