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사견)]
융합이 분열보다 낫다는 건 자연의 원리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본질이다. 에너지는 흩어질 때보다 모일 때 강하다. 나눗셈보다는 덧셈이, 덧셈보다 곱셈이 더 큰 힘을 만들어낸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선 한국이 살아남는 유일한 해법은 통합을 넘어선 '융합'이다.
지금 세계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주장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다. 4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인한 중동의 불안정,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관세전쟁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 속에서 한국 경제가 믿을 수 있는 건 정치도 이념도 아닌 경제의 중심인 '기업'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제조업은 '1등 DNA'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전해왔다.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배터리·방위산업 등 제조업 전분야에서 이처럼 높은 경쟁력을 갖춘 국가는 전세계에 드물다. 오랜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이나 일본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중국은 모든 국가 역량을 산업과 기업에 집중해 한국이 세계 1위를 하던 산업을 하나씩 잠식해나갔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조선·철강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넘어서는 중국의 속도는 두려움 그 이상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공세에 맞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합을 넘어선 융합 정신이다. 통합이 둘을 하나로 묶는 덧셈이라면 융합은 둘을 묶어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곱셈이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는 통합의 전단계인 기업간 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아직 물리적 통합이나 유기적 융합까지는 아니지만 국내 기업간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한단계 더 높은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에 1조 5000억원을 들여 만든 배터리 합작공장인 HLI그린파워라든지, 중국의 LCD TV 공세에 맞서 삼성전자 VD사업부가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을 탑재해 신시장을 여는 등 국가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시도다. HLI그린파워를 얼마전 방문했던 구광모 LG 회장은 전기차 캐즘 돌파를 위한 파트너와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는 LG 뿐만 아니라 삼성SDI나 SK온과도 협력해 코리아원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나의 유기체인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제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기업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고 정부가 이를 하나로 통합·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융합의 단계까지 이끌어 세계 시장에서 제조강국 코리아의 원팀으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다. 국가간 파워게임에서 이 같은 융합 전략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5대 그룹 총수와 경제 6단체장을 만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며 "우리 기업인들과 각 기업이 경제성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전쟁터에 나선 기업인들에게는 더 없이 큰 힘이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주요 기업 리더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인 것은 현재의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힘을 모아 이를 극복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경제 위기 앞에서 정부와 기업, 노사와 정치권 모두가 하나의 목표 아래 힘을 모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 위에 만들어진 통합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융합'이 절실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 정체성 위에서 서로 다른 자원을 하나로 묶는 융합은 한국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경제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에겐 과거 여러 국난을 극복했던 저력이 있다. 통합하고 융합하면 우리가 이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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