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내년 평양서 '평화의 스매싱'
축구·농구대회 교류 이후 김대중 방북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판문점 정상회담
남북관계에서 스포츠는 꽉 막힌 대화의 숨통을 틔우는 산소통이자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북한은 때론 우리에게 체육교류의 손길을 먼저 내밀며 밀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5일로 25주년을 맞은 ‘6·15 공동선언’도 민간 영역에서 먼저 이뤄진 체육교류가 발판이었다. 1999년 8월 평양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고, 9월과 12월 각각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현대통일농구대회’가 열렸다. 이후 다양한 체육 교류 논의가 활성화됐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정상회담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마침내 성사됐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했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체육교류는 남북한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 국제사회의 호응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돼 왔다"며 "정상 간 대화 분위기 조성에는 굉장히 효과적인 이벤트였다"고 설명했다.
축구·농구대회 교류 이후 김대중 방북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판문점 정상회담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지난 정부에서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특히 역대정부는 체육교류를 앞세워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복원하며 화해 무드를 조성해왔다. 이번에는 탁구가 선봉에 섰다. 달라진 대북기조에 맞춰 정부와 체육계의 구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향후 전망과 한계를 짚는 분석기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2000년 6월 14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북한 백화원영빈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튿날 민족의 화해ㆍ협력을 바탕으로 평화 관계를 조성한다는 취지의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남북관계에서 스포츠는 꽉 막힌 대화의 숨통을 틔우는 산소통이자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북한은 때론 우리에게 체육교류의 손길을 먼저 내밀며 밀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5일로 25주년을 맞은 ‘6·15 공동선언’도 민간 영역에서 먼저 이뤄진 체육교류가 발판이었다. 1999년 8월 평양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고, 9월과 12월 각각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현대통일농구대회’가 열렸다. 이후 다양한 체육 교류 논의가 활성화됐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정상회담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마침내 성사됐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했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체육교류는 남북한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 국제사회의 호응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돼 왔다"며 "정상 간 대화 분위기 조성에는 굉장히 효과적인 이벤트였다"고 설명했다.
6·15 선언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최초의 남북 공동 입장이 이뤄졌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응원단까지 파견하면서 남측과의 교류에 적극 호응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2018년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고 이후 4월 27일 김정은 위원장 체제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 선수단의 방문이 남북 화해 무드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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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자신감 붙었을 때 스포츠 이벤트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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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때 한국을 찾았던 북한 응원단.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이 된 리설주가 맨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1980년대에도 스포츠 교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순위로 고려한 카드였다. 지난해 공개된 제5차 남북회담문서(1981년 12월~1987년 5월)을 보면, 당시 조상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박정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 출신)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을 추진했다. 이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전면에 나서며 1984년 7월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본선에 출전할 남북 단일팀을 꾸리기 위한 회담을 조율했다.
다만 이와 같은 정·재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악재가 터지면서 단일팀은 물건너갔다. 1983년 10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터진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북한은 국면을 전환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올림픽 단일팀’ 카드를 자발적으로 꺼냈다. 북한은 정상국가의 간판을 달고 국제무대에 나서고자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팀 제안을 했지만, 우리 대표단은 아웅산 테러 인정과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단일화는 무산됐다.
양 총장은 스포츠가 남북 교류의 발판이 되는 이유로 "①국제 경기 규칙들이 갖춰져 있어 룰이나 방식, 경기장 등에 대한 갈등 소지가 적고 ②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스포츠 정신이 발휘되는 점"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역사적으로 응원 도구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깃발·현수막 등으로 갈등이 생기는 등 (체육교류의 효과가)항시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북한이 직접 스포츠 이벤트를 연다는 건 그만큼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는 방증인 만큼, (체육계와 정부 모두) 서로를 자극하지 말고 (평양 탁구대회에 앞서)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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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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