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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한국공학대학교에서 열린 ‘학식먹자 이준석’ 행사에서 학식을 먹으며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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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 작가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국면 중에 가장 많은 이슈와 화제를 몰고 다녔던 사람은 당선이 유력했던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도, 이에 맞섰던 국민의힘의 김문수 후보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원내 3석에 불과한 소수 정당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였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뉴스를 양산했고, 마지막 티브이 토론회에서 큰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하였음에도 약 8.34%를 득표하여 3위를 차지하였다. 선거 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15%에는 크게 미달하였지만,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던 득표였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후보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이준석은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층으로부터 약 37%의 표를 얻은 것으로 추정되어, 해당 그룹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되었다. 대선의 당선자는 현직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었지만, 투표의 양상에 대해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온 사람은 정작 당선자인 이재명이 아니라 3위에 그친 이준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른바 ‘이대남’에 대해 다시 주목하고 나섰다. 이들은 왜 이재명도, 김문수도 아닌 이준석을 선택한 것일까?
혹자는 청년 남성층 사이에 넓게 퍼진 ‘혐오’를 주목하고 나섰다. 어떤 이는 이준석을 ‘제도화된 일베’라고까지 일컬으며 청년 남성층의 보수화, 극우화를 우려하였다. 어떤 이는 성별, 세대 갈라치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후보가 비록 특정 세대 내의 특정 성별이라는 제한된 집단이지만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탄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준석 현상은 단순히 우리에게 우려와 탄식만을 내뱉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준석 현상의 배경에 자리한 ‘배제의 담론’을 우리가 과연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 청년 남성층의 사이에는 연대보다는 배제가 배경이 된 담론이 만만찮은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특정 정치인의 의도적인 ‘갈라치기’ 때문이라는 분석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정치인이 메시지를 내어 대중을 분열시키기 이전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이미 대중 집단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점점 ‘일하는 청년’이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무려 50만4000명으로,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섰다. 당연히 청년층 취업자 수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즉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나라가 당당히 경제적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하였음에도, 그 경제력을 분배받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불가피하게 한정된 경제적 자원을 두고 높은 수준의 경쟁을 치러내야만 한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고강도의 경쟁이 발생하게 되면, 결국 그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공정하게 그 자원을 나누기 위해 경쟁의 규칙에 집착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단순히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그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중요해지지 않게 되는 ‘오염된 공정’이 등장하게 된다. 오염된 공정하에서 연대의 미덕은 소멸하고, 경쟁의 탈락자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잡음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만 집중하는 배제의 담론이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정치인의 메시지라는 것은 이 지점에서 이미 분열되어 있는 유권자 그룹의 일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정도의 일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갈라치기가 문제라면, 우리는 그 갈라치기의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경제적 모순에 대해 직시해야만 한다. 특정 정치인이 발화하는 언어만을 단속하고 그를 막는 방법만을 논의하게 될 경우, 결국 그 사람을 한동안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다른 사람이 언젠가는 같은 언어를 또 발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청년 남성들의 움직임이 ‘극우화’로 여겨지고 이것이 우려된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20년도 더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한 바가 있다. “빨리 취업해서 빨리 결혼하고 빨리 자녀를 낳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사회를 만들어 왔을까?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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