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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의료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는 인쇄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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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 인구·복지팀장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국정 방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이념이 아닌 ‘실용’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을 이념적으로 보면 기업·시장 친화 정책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경기 부양으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도 기업들이 경영권 위축을 우려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의지도 밝힌다. 실용은 완성형의 정의를 갖고 있진 않다. 과정과 결과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실용을 앞세운 국정철학은 다소 모호하고 국민이 체감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갓 출범했다. 국정과제가 나올 때까지 한달은 걸릴 것이고, 아직 지명되지 않은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내각 구성을 완료할 때까지도 꽤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사회·경제 문제들은 모든 여건이 마련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식 총리가 되기도 전에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모습은 ‘실용정부’의 행보를 빨리 보여주려는 조급한 모습으로 비친다.
한 정부의 성패는 개혁과제에서 가려진다. 흔히 개혁을 시작할 때는 정당성이나 명분, 사회적 효용, 거기에 국민적 지지까지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국정동력까지 잃게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이 그랬다. 처음에는 국민 80% 이상 지지했다. 하지만 의사 집단사직 사태가 길어지면서 피로감은 쌓이고 개혁 초기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행태를 비판하던 여론은 어느새 정부도 잘못하고 있다는 양비론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을 준비도 없이 밀어붙였다고 비판한 이 대통령은 무너진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실용정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방향은 제시했다. 지역·공공의료 강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가치이고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실행 방식이다. 새 정부는 공공의대를 설립해 지역·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길러내는 방안을 제시한다.
전 정부의 의대 증원은 의사 공급을 늘리면 자연스레 비인기 분야로 의사들이 흘러들어 갈 것이라는 시장 논리에 기반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공공의대는 접근이 다르다. 나라가 지역·공공의료에 일정 기간 복무할 의사를 별도로 육성한다. 사회적 지위 향상과 경제적 보상을 바라며 의사가 되려는 열망이 의대 광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의사들을 따로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대를 만든다고 해도 의료의 공공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일이다. 예컨대 지역 공공병원에서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뒤 ‘계약’이 끝나면 다시 돈 되는 피부과·성형외과 의원을 차리러 서울로 향할 수 있다. 사명감에만 기댈 수 없다. 의사들이 일하고 싶은 지역·공공병원이 많이 생겨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지역의료 인프라에 획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공공의료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그것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공의대는 그냥 지역민들에게 생색내는 선물에 그칠 수 있다. 그건 실용이 아니다.
공공의료를 향한 국민의 기대는 분명하다. 최근 보건산업진흥원 조사를 보면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은 2023년 76%에서 의-정 갈등을 겪은 지난해 81%로 올랐다. 다만 여전히 민간병원만 이용한다는 사람들이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모두 이용하는 이들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공공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먼 거리와 교통 불편을 지적했는데, 이는 공공병원 수를 늘리거나 입지를 개선하면 사람들이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민간병원이 우리 의료체계의 9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공공의료 강화는 어려운 과제다. 고착화한 의료 이용 관행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1년4개월째 국민이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번에는 실패가 없어야 한다. 실용은 결국 성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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