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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싶은 데 팥이 나지만 우리가 먹은 감의 씨를 심은 곳에는 크고 맛있는 감나무가 아닌 야생감나무, 고욤나무(Diospyros lotus L.)가 난다. 고욤나무는 숲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지만 열매가 자그마하여 먹잘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리 맞은 열매는 단맛이 짙어져 예전 좋은 간식거리였다고 한다. 도시나 숲길에서 자생하는 개체는 낙화율이 높아서 꽃은 많이 피어도, 실제로 열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꽃받침(깍지처럼 보이는 부분)이 열매가 자랄 자리를 감싸고 있다. 수정이 이루어지면 이 꽃받침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감의 꼭지가 된다. 김은아 도시스토리텔러 제공 |
온 세상이 푸른 빛, 숨을 뿜어내는 누리달 6월이다. 북미 원주민들은 6월을 '딸기 달(strawberry moon)' '초록 옥수수 달(green corn moon)'이라고 불렀고, 유럽에서는 '장미 달(rose moon)'이라 했다. 각 시기에 뜨는 달의 주기를 따라 계절, 생태, 생활 등에 이름을 붙여 쓴 것이다. 낯설지만 곱다. 오늘날 삶의 속도에서, 이런 이름들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손바닥 세계에 갇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실제 들여다볼 마음의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4시간이 넘는다. 뉴스를 스크롤하고, 영상을 소비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거나 감각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건강과 생태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도심에는 숲길과 산책로가 늘어나고 있다. 좁은 길을 걸으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러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일상에서는 듣지 못했던, 그리고 들을 수도 없는 소리가 들려 온다. 고욤나무에서 감꼭지가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소리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생명의 언어다. 생태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이를 '생태적 감각'이라 부른다. 자연을 이용하거나 감상하는 것을 넘어, 존재로서 서로 듣고 들리는 관계를 맺는 일이다. 생명의 존재 신호를 통해 '나'를 '우리'로 확장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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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류들은 암꽃과 수꽃을 따로 피운다. 이것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중매쟁이가 연(緣)을 놓듯 꿀벌들의 분주함이 있어야 한다. 꽃잎만 떨어지고 꽃받침이 가지에 남은 경우, 열매가 자랄 가능성이 있다. 수정이 성공했다면 이 자리에 감이 맺힌다. 감꽃이 수정되지 않거나 안에서 말라버리면, 꽃잎과 함께 꽃받침(깍지)까지 통째로 떨어진다. 이 경우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야생감나무에서는 이런 낙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김은아 도시스토리텔러 제공 |
산책로에서 어르신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 들으시고, 20, 30대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다닌다. 아웃도어 차림의 중년 여성들은 집안 이야기로 바쁘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감각을 회복하는 연습이다. 스마트폰 알림에 반사적으로 손이 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자신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다. ‘자연의 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다시 열어주는 열쇠’라고 하는 한 생태학자의 말처럼 그 소리는 우리가 생명체로서의 뿌리를 되찾게 한다. 하루 10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어폰을 벗어보자. 옆 사람과의 대화도 ‘일시 정지’해보자. 작은 걸음, 우리 자신을 되찾는 시작이 될 것이다.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경이와 생명의 리듬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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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이 수정된 뒤 열매를 맺으려다, 성장하지 못하고 안에서 말라버리면 꽃잎, 깍지(꽃받침), 그리고 작은 열매까지 통째로 땅에 떨어진다. 이는 ‘유과 낙과’라 불리며, 스스로 생존과 번식을 최적화하려는 전략적 과정으로 야생감나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선택적 포기’이다. 김은아 도시스토리텔러 제공 |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그 소리가 감각되는 순간, 함께 살아가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된다. 6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만의 달 이름을 지어보면 어떨까. '감꽃 피는 달'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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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도시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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