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제이비어 브런슨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5월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고 비유했다.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갖고 한반도 밖으로 진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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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운신 폭 확보가 과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가시화
안보 공백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미·일은 ‘하나의 전구’ 구상 논의 착수
순환 배치를 위해 최근 주한미군 주둔지인 경기도 평택에 도착하고 있는 미8군 제4보병사단 제1스트라이커 여단 소속 병력. [연합뉴스] |
그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을 ‘하나의 전구(戰區)’로 통합해 대응하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논의하고 있다. 이 구상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일본·호주·필리핀, 그리고 한국 등이 방위 협력을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대북 견제가 목적인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중 견제 쪽으로 급격히 변할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의 안보 우산으로 혜택을 보는 국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문제다. 한국 입장에서 더 어려운 문제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보다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 변화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새로운 미국 국방전략(NDS) 구상을 주도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미국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를 따져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는 우선순위파(Prioritiser)의 대표적 인물이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은 서로 자기 쪽으로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트럼프 정부 입장을 고려하면 주한미군은 감축이나 부분 철수 또는 대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 확보 등 몇 가지 시나리오가 상정이 가능하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정치적 압박이나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만일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분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있었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란을 상기시킨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국 측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을 존중해주는 대신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합의를 끌어냈다.
한·미방위조약 3조 어떻게 해석할까
앞으로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을 한반도 외부, 특히 중국과 대만이 관련된 문제로 동원하려 할 때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주한미군이 한반도용으로만 묶여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영토 혹은 합법적 관리 영역에 대해 ‘태평양지역(Pacific area)’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상호 합의에 따라 미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이 허여한다고 돼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되 활동 영역은 태평양지역이라고 해석할 경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막을 근거나 실익이 없다. 주한미군은 해·공군 위주가 아니라 대부분 지상군이어서 전략적 유연성 증대에 별 효용이 없지만 그로 인한 안보 공백 발생 가능성에는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따라 미국의 동맹정책은 변화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의 안보를 약화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중국 억지에 기여하고, 유한한 미국의 국방 자원을 동맹국으로서 보완한다는 방향에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여기에서 핵심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이 어떻게 얼마나 관여할 것인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한국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미국의 주적으로 간주하며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재명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6·3 조기 대선 직후 백악관은 첫 논평에서 한국 대선을 “자유롭고 공정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과 동행하면서도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적절히 완화하는 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의 기본 입장은 미국과의 연계보다 더 나은 안보 경로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지지하는 것은 이념이나 가치보다 안보 강화를 위한 실용적인 조치로서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다.
진정한 실용외교가 가능하게 하려면 중국·러시아·북한 등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개방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앞서 윤석열 정부의 가치·이념외교에서 탈피를 의미하지만, 실용외교는 자칫 무원칙 외교나 기회주의 외교로 읽힐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는 ‘이재명표 실용외교’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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