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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의 시선] 김대업, 우리법, 시녀 그리고 검찰

중앙일보 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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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의 시선] 김대업, 우리법, 시녀 그리고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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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1998년 7월 국방부 소속 검찰부 고등검찰관에게 한 전직 군인이 찾아왔다. 막 출소한 전과자였던 그는 병역 비리 브로커였고, ‘당연직’ 병역 비리 전문가였다. 수사 돌파구가 필요했던 검찰관은 그를 쓰고 싶었다. 상사는 그가 마뜩잖았으나, 검찰관이 재차 조르자 “원한다면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일임했다. 그는 과연 족집게였다. 검찰관은 그와 함께 일하면서 수백명의 병역 비리 사범들을 적발해냈다.

그러나 그 브로커 김대업이 대선에 관여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대업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관련 핵심 진술을 윗선에 보고했으나 은폐됐다”고 주장했다. 그때도 그 검찰관은 김대업과 언행을 함께 했다. 그 ‘폭로’는 이 후보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 검찰관은 이명현 소령이었다. 이른바 ‘채상병 특검’으로 임명된 바로 그다.



김대업 편이던 그 특검 잊었나

중수청법, ‘권력 시녀’ 앉힐 수도

파견검사 결기가 검찰 최후 희망


채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가 1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채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가 1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세상은 윗선에 맞선 ‘참군인’으로만 그를 기억할 뿐, 김대업과의 동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법원이 이후 판결을 통해 그 ‘은폐’ 주장에 대해 “거짓이라는 주장이 일정 부분 인정된다”고 못 박은 뒤에도 이 특검이 ‘김대업 공작’의 피해자들에게 사과나 유감 표명을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김건희 특검팀’의 선장인 민중기 특검은 판사 출신이다. 법관 출신 ‘수사 별동대장’의 실례는 공수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공히 판사를 역임했던 1·2대 공수처장의 민망한 수사력은 전 국민이 목도한 바다. 특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평받은 4개 특검팀(이용호 게이트·대북송금·드루킹·국정농단) 중 대북송금 특검팀을 제외한 3개 특검팀 지휘자가 검사 출신이었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 게다가 민 특검은 형사 사건 전문가도 아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던 노동법 전문가일 뿐이다. 두 인사가 ‘검찰 폐지, 검사 배제’ 원칙에 터 잡은 여당의 ‘우리 편으로 구색 맞추기’ 일환으로 보이는 이유다.

내친김에 민주당의 이른바 ‘검찰폐지 4법’을 들여다봤다. 중대범죄수사청법 제7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검찰총장을 대체할 중수청장을 뽑는 중수청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으로 행안부 차관, 공수처장, 경찰청장, 여당 추천 2인, 기타 정당 추천 2인을 둔다는 내용이다. 공수처장만 여당 사람으로 갈아 치운다면 7인 중 5인이 사실상 대통령과 여당의 사람들이다. 의결 정족수인 ‘재적 위원 3분의 2’는 자동으로 달성된다. 그야말로 ‘권력의 시녀’를 앉힐 수 있다. ‘독립성과 중립성 강화’는커녕 오히려 ‘권력에의 종속 심화’가 요지인 이런 법을 어떻게 수사 기관 개혁 법안이라고 들고 올 수 있었을까.


공소청 설치, 즉 수사와 기소의 분리도 과연 좋은 결과로 이어질까. 검찰이 중요 사건 재판을 수사 검사에게 맡겨온 건 수사 검사라야 미묘한 핵심을 알고 제대로 재판에 임해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사·기소의 분리가 그렇게 절실한 과제라면 왜 이번 3개 특검법에는 수사 주체인 특검팀에 공소 유지 책임까지 맡겼을까. 아직 공소청이 없기 때문이라고? 즐비한 공판 검사들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국가수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발의한지 하루가 지난 지난 12일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국가수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발의한지 하루가 지난 지난 12일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이렇듯 거친 여당의 대검찰 공세를 정색하고 문제 삼을 수가 없다. 검찰 때문이다. 지난 정권 내내 권력에 굴종하면서 스스로 무너진 검찰 앞에 서면 여당의 행보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하릴없어진다. 어찌 보면 ‘윤석열 정권’은 검찰 입장에서 신뢰 회복의 호기였다. 스스로 배출한 대통령에 대해 성역 없이 원칙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국민이 앞장서 검찰 폐지 주장을 배격했을 거다. 그러나 그 ‘골든 타임’을 ‘윤석열 바라기’로 일관하며 허비해버린 원죄 때문에 이제 검찰 비호 여론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자업자득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날받은 사형수처럼 망연히 최후를 기다려야만 할까. 역설적이지만 그나마 마지막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역시 검사들이다. 3개 특검팀에 파견될 120명의 검사 말이다. 20여년 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에 파견된 송해은·우병우·윤대진 검사는 검찰총장과 고검장, 현직 대통령의 ‘집사’와 아들까지 모조리 잡아냈다. 이번에 파견되는 검사들 역시 전직 최고 권력자든, 검찰 최고위층이든 죄가 있다면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척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역시 검찰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금이나마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하여 만일 요행히도 검찰이 생명을 부지한다면 못난 선배들을 반면교사 삼아 권력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야 한다. 몇 번을 곱씹어봐도 역시 검찰이 사는 길은 ‘살아있는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길 뿐이다.

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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