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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도구로 동물 울음 소리…예술의전당에 퍼진 악기의 무한 표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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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도구로 동물 울음 소리…예술의전당에 퍼진 악기의 무한 표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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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사슴을 유인하는 데 쓰는 사냥도구 ‘엘크 뷰글’이 사용된 노재봉 작곡 ‘디오라마’를 연주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사슴을 유인하는 데 쓰는 사냥도구 ‘엘크 뷰글’이 사용된 노재봉 작곡 ‘디오라마’를 연주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공연 도중 무대에서 동물이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객석을 뒤흔들었다. 지휘자 홍석원이 이끄는 국립심포니가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한 작곡가 노재봉(30)의 ‘디오라마’란 곡이었다. 타악기 주자가 연주한 특수 악기 엘크 뷰글이었는데, 본래 사슴을 유인하는 데 쓰던 사냥도구다. 튀르키예 태생 작곡가 파질 사이(55)의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에서도 타악기로 표현한 소총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이날 공연은 특수한 악기 사용을 통한 표현의 확장이 현대 음악의 주요한 특성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엘크 뷰글은 사냥꾼들이 동족인 것처럼 사슴을 속이는 데 쓰거든요. 가짜 소리라는 이 악기의 상징성에 꽂혔다고 할까요.” 국립심포니 상주작곡가로 활동 중인 노재봉은 “낯설고 비명 같은 음색도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 선택한 악기”라고 설명했다. 엘크 뷰글에 이어 클라리넷과 호른, 트롬본이 차례로 같은 선율을 모방한다. 자연 소리를 흉내 낸 인공음을 모방하고 증폭하면서 거짓이 차곡차곡 쌓이는 효과를 꾀한 것 같다. 11분짜리 이 곡엔 베이스드럼과 마림바를 비롯해 차임벨, 라쳇, 크로탈, 슬랩스틱, 벨트리, 마크트리 등 다양한 음색을 지닌 12종의 타악기가 등장한다.



미국 예일대에서 공부 중인 노 작곡가는 “지난해 가을 딥 스테이트(심층국가)와 부정선거를 신봉하는 음모론자를 만나면서 곡을 구상했다”고 했다. 평소 작업 방식에 따라 악보를 써내려가기 전에 먼저 ‘디오라마’란 제목부터 정했다. 디오라마는 플라스틱 나무처럼 진짜처럼 보이지만 가짜인 모형을 뜻하는 단어다. 지난해 11월16일 곡을 완성했고, 계엄령이 선포됐던 12월3일 다른 공연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비주류를 맴돌던 (부정선거) 주장들이 한국에서도 급속히 떠오르는 걸 보면서 몹시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가짜가 진짜를 덮고 어느새 그 자리를 대신하는 세상”이라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떤 진실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질 사이가 작곡한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에서 비올라 연주자가 ‘열매껍질 쉐이커’를 흔들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파질 사이가 작곡한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에서 비올라 연주자가 ‘열매껍질 쉐이커’를 흔들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피아니스트로도 널리 알려진 파질 사이는 음악으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곡가다. 2017년에 발표한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에 대해 파질 사이는 “유럽과 튀르키예의 끔찍한 테러 공격에 초점을 맞춰 만든 자유와 평화를 위한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이 곡을 초연했고,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음반으로도 발매한 프랑스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37)가 내한해 국립심포니와 협연했다. 이 곡엔 투명한 원형 틀에 넣은 구슬을 흔들어 잔잔한 파도 소리를 내는 오션 웨이브를 비롯해 봉고, 테너 드럼, 콩가, 우드볼록 등 7종의 타악기 소리가 나온다.





프랑스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가 지난 13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국립심포니와 파질 사이가 작곡한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를 협연했다. 국립심포니 제공

프랑스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가 지난 13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국립심포니와 파질 사이가 작곡한 첼로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를 협연했다. 국립심포니 제공


특히 ‘테러 & 비가’란 부제가 붙은 2악장에선 ‘두두~두두둣~…’ 콩이라도 볶는 듯한 요란한 소총 소리가 울리며 관객을 테러 현장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타악기 톰톰과 테너 드럼이 번갈아가며 내는 소리다. 악보엔 에이케이(AK) 소총 시리즈로 유명한 러시아 무기 회사 ‘칼라시니코프’란 글자와 함께, ‘절규하듯’이란 지침이 표기돼 있다. 에이케이 소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연주하란 얘기다. ‘희망의 노래’란 부제의 3악장에선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을 미끄러지듯 긁으면서 연주하며 새 지저귀는 소리를 표현하고, 비올라 연주자는 ‘열매껍질 쉐이커’를 흔들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노재봉 작곡가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무한대로 표현을 확장하는 게 현대 음악의 주요한 흐름인데, 이 중에서도 타악기 사용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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