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수석은 네이버의 LLM ‘하이퍼클로바X’ 개발을 총괄한 인물로, 기술 설계부터 인프라 확충, 윤리 프레임워크 검토에 이르기까지 기술 전반을 아우른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전략가로서, 그간 데이터 주권과 기술 독립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소버린 AI(주권형 AI)’라는 화두를 업계 안팎에 던져왔다.
업계에선 하 수석의 역할이 단순한 기술 고문을 넘어, 국가 AI 전략의 실질적 설계자로 작동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특히 그가 민간에서 주도한 LLM 프로젝트는 단순한 모델 개발을 넘어 데이터셋 확보, 파운데이션 모델의 경량화와 경합 모델 실험, 전사적 MLOps 구축, 경량 GPU 활용 최적화, 그리고 보안 대응까지 모두 포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력이 향후 정부의 AI 실행 전략에 실질적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100조 투자”, “AI 3대 강국 도약”, “GPU 5만 개 확보”, “AI 인재 10만 명 양성” 등 장밋빛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선언을 실행으로 전환하려면 단순한 예산 배정이나 제도 정비에 머물러선 부족하다. 기술의 흐름과 산업 생태계, 글로벌 기술의 정치경제학까지 이해하는 정교한 전략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 수석이 맞닥뜨릴 첫 시험대는 바로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초 2027년 개소를 목표로 추진되던 이 사업은 총 사업비 2조5000억원, GPU 1만 장 확보 등 야심찬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연속 공모 유찰이라는 뼈아픈 실패를 맞았다. 민간 컨소시엄의 참여는 전무했고, 정부가 제시한 사업 구조에 대한 시장 신뢰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다.
업계에서는 이를 ‘예견된 유찰’로 평가하고 있다. 수요 예측 없는 과금 구조, 수익 불확실성, SPC 바이백 조항 등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민간에 전가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단 3개월 만에 수천억 원 규모의 컨소시엄을 꾸리라는 일정도 현실과 괴리가 컸다. 민관 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민간 위탁’에 가까운 구조는 시장과 괴리된 설계였다.
이처럼 핵심 AI 인프라 사업조차 민간의 신뢰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내세운 ‘AI 대도약’ 구상이 실행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전 정부에서 추진되던 사업이긴 하지만 하정우 수석이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단순한 기술 전문가를 넘어 정책 조율자로서의 능력을 시험받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AI 인프라는 국가 전략의 핵심 토대다. AI 생태계의 성장은 결국 GPU와 같은 자원의 접근성과 인프라 확산에 달려 있으며, 이를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고도의 설계력이 필요한 과제다. 정부는 공모 구조를 재설계하겠다고 밝혔지만, 단순한 조건 조정이 아닌 정책 철학의 전환이 없다면 새로운 사업도 위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AI미래기획수석의 역할은 행정 각 부처의 협의 수준을 넘어서, 시장과 기술, 전략과 거버넌스를 연결하는 정책 아키텍처의 총괄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GPU 확보와 컴퓨팅 자원 배분을 단순한 자산 집행으로 보지 않고, 주권형 AI 생태계로 이어지는 연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하 수석 또한 평소 한국의 AI 경쟁력을 위해선 우선 GPU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러한 면에서 평소의 지론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국가AI센터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 수석은 민간 경험을 통해 거대 모델은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와 윤리, 기술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만 진정한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의 역할은 민간이 실험했던 전략과 실행 프레임을 국가 정책에 맞게 번역하고 조율하는 데 있다.
AI미래기획수석은 아직 정립된 모델이 없는 자리다. 고도의 전문성과 통합적 정책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며, 정부 부처 간 조율을 넘어 민간·학계·국제 협력을 관장해야 할 위치다. 그런 점에서 하 수석의 향후 행보는 단순한 정책 수행이 아니라, 한국 AI 전략의 실질적 방향성을 결정지을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 실험이 아니라 실행이다. 특히 국가 AI컴퓨팅센터 사업의 재설계는 하 수석 리더십의 성패를 가늠할 첫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하정우 수석이 민간의 풍부한 경험을 어떻게 공공 전략에 접목할지, 그 행보에 한국의 AI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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