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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이제는 그가 국민을 살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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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이제는 그가 국민을 살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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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모든 생명의 원리가 그러하듯 정치인도 진화해야 성공한다. 그 자리와 책임에 걸맞게, 국민의 지지와 견제를 자양분 삼아, 자신의 알을 깨트리고 나올 때 비로소 더 높게, 멀리 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된 정치인 이재명은 속도가 빠른, 대표적인 '성장캐'(캐릭터)이다. 변방의 장수일 때 만난 그는 고슴도치처럼 한껏 날이 서 있었다. 본인 관련 불리한 질문에 사나운 눈빛으로 반박하던 모습에선 분노를 동력으로 한 싸움꾼의 풍모가 강하게 느껴졌다. 0.73%포인트 대선 패배 이후 압도적 의석을 지닌 거대 야당을 이끄는 대표로 마주했을 땐 확실히 여유가 넘쳐 보였다. 전임 정권의 탄압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탓일까. 자신보다는 당원과 국민을 앞세우기 시작한 그는 한 단계 성장한 듯 보였다. '나부터 살겠다'에서 시작된 생존 정치의 명분이 '모두를 살리겠다'로, 한층 깊고 넓어진 셈이다. 불법 계엄으로 정점을 찍으며 허무하게 날려 버린 3년 탓에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대, '대한민국의 도구로 써 달라'는 그의 외침이 가닿은 배경이다.

이제 그가 증명할 건 그래서 '어떻게 살리겠다'에 대한 비전과 진정성을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납득시키고,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다.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힘을 주지 않은 취임사의 핵심은 무너진 경제를 회복시켜 두 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먹고살 만해지면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꽤나 단순한 접근법에 비해 그의 정치 스타일은 양면적이다. 고정된 이념과 사상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누구는 실용적이라 칭찬하지만, 누구는 어디로 튈지 몰라 불확실하다고 두렵다고 한다. 당장 주주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상법개정안, 누구도 죽지 않고 퇴근하는 안전 사회를 담보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두고도 양립 불가의 가치가 아님에도 기업 경영이 악화된다며 일단 반대부터 하는 목소리가 있다. 사안마다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어떻게 뛰어넘을지 시험대에 섰다.

다행히 그는 소통에 능한 편이다. "변호사 출신이다 보니, 생각이 다르거나 반대되는 논리를 일부러라도 찾아 듣는 게 몸에 배어 있다"는 평가(성남 출신 오랜 참모)다. 다만 어떤 결정을 내려놓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는 겸허함도 필요해 보인다. 권력자가 애먼 고집에 갇힐수록 국민의 삶이 피폐해졌던 지난 3년을 떠올리면 쉬운 문제다. 국민을 이기려 들면 기어코 진다.

그는 "국민들이 저를 살려주셨다"며 "나머지 덤의 삶은 나를 살려준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했다. 남은 임기 내내 자신을 살리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하겠다는 초심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강윤주 국회팀장 kka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