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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만 200여종 파는 '창고형 약국'…"약국 수십 곳 사라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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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만 200여종 파는 '창고형 약국'…"약국 수십 곳 사라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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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전문의약품(ETC∙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은 취급하지 않을 예정이라 조제실은 없다"

지난 16일 메가팩토리약국 성남점에서 만난 정두선 대표는 약사 가운을 입고 이같이 말했다. 약사가 약을 조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만 그는 "일반의약품(OTC) 중에서도 처방을 받아야만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은 취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선 택배 접수실이라고 써 있는 안내판과 무인 주문기계들도 눈에 띄었다. 반소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다음달부터 택배와 무인 주문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탁 세제∙비누도 판매…"사업 커지면 안마 의자도 팔 것"

130평 규모의 국내 첫 창고형 약국엔 2단카트를 끌거나 종이상자를 든 고객들이 붐볐다. 입구의 전광판엔 2500여개 품목을 판매한다고 써 있다. 매장 벽에 붙은 안내문에 따르면 의약품 종류만 51개가 진열됐다. 진통제 198종과 감기약 185종, 한방의약품 115종 등 품목이 다양했다. 세탁 세제와 비누를 비롯한 생활 잡화도 판다. 정 대표는 "사업이 더 커지면 안마 의자도 팔겠다"고 말했다.

일부 진통제(안티푸라민 30매)는 일반약국보다 4000원 저렴했다. 반면 소아용 코막힘약(오트리빈)의 가격은 일반약국 중 값을 싸게 매긴 곳과 같았다. 고객들도 스마트폰으로 약값을 검색·비교하며 카트에 제품을 담았다. 한 중년 남성은 "축구를 하다 다치기 전 파스를 사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당장 약이 필요하지 않지만 상품을 미리 사려는 고객들이 많았다.



濠 등 예전부터 창고형 약국 생겨…韓 '배달 전문' 창고 형태 약국 줄폐업

업계에선 호주∙아일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창고형 약국처럼 성공할지 주목 중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는 약사가 아닌 사람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약사법이 있다. 2022년엔 국내에 약을 조제해 배달하는 창고 형태 약국들이 생겼지만 약사들의 압박에 모두 문을 닫았다.

정 대표는 폐점 시간인 오후 7시까지 매장을 돌며 고객 요청에 따라 제품을 설명했다. 직원에 따르면 상근 약사 7명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이곳에서 일한다.


기자가 약국용 영양제 구매를 고민하자 명찰을 찬 다른 약사는 "전시품 중 오메가3 함량이 제일 많다"며 "저녁 식사 후 바로 복용하는 게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ㄱ씨는 "저도 거기서 여러 제품을 비교해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잉 쇼핑' 비판도…정 대표 "해외 진출 기대"

약사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오후 약사계 관계자는 "그 약국 주변의 수십 개 약국들은 폐점할 수도 있다"며 "거긴 일하는 사람이 많아 인건비를 아끼려고 심야엔 운영하지 않을 텐데 동네 주민들은 집 근처에서 심야에 약을 사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치료제는 증상이 생기면 구매해야 하는데 과잉 쇼핑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약 유통·판매 방식의 변화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혔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약국 업계의 미래는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히는 '메가 셀렉션'에 있다"며 "폭이 넓은 만큼 10만원대 구매 고객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번 개점은 약국의 비대면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일각의 움직임과는 관계없다"며 "이곳을 시작으로 해외에 'K약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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