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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를 통해 본 대학의 자유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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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를 통해 본 대학의 자유 [아침을 열며]

속보
대통령실 "철강·알루미늄 품목 관세는 논의 안 해"
학문의 자유를 걱정하는 편지
위기에 빠진 아이비리그 대학
대학의 재정자립에 대한 고민


지난달 29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열린 졸업식. AF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열린 졸업식. AFP=연합뉴스


친분 있는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며칠 전 메일을 받았다. 이번 학기에 퇴직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도 토로했다.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가 보내온 메일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지난해 두달여 만에 아이비리그 총장 4명이 잇달아 사퇴했던 교수 사회의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억누르려는 보조금 취소가 연구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강했다. 그런데 일반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동조가 많지 않다고 한다. 공격받는 쪽이 1년 학비가 1억 원에 육박하는 소수의 대학이다보니 그럴 수 있다. 미국도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보니, 엘리트 대학들이 대중에게 호감을 얻기는 어렵다. 인기 없는 집단을 공격하여 대중과 지지층으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는 갈라치기가 작동하는 것 같다.

작년 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공격하자 컬럼비아대에서 대형 시위가 일어났다. 힘없는 소수에 대한 지지였다. 컬럼비아대는 아이비리그에서도 외국인 비율이 높고, 전통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이 점은 2011년 가을, 월가에서 봉기했던 시위대를 연상시킨다. 시위대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1%의 부자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양극화에 저항했다. 경제 엘리트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현실을 비판했던 대규모 군중시위는 석 달쯤 지속하다가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미국의 경제시스템이 달라진 것 같진 않지만, 2017년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운동과 2020년 인종차별을 다시 일깨웠던 BLM(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등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는 기득권을 공격해서 보수 이념을 강화하는 좀 색다른 양상이 나오고 있다. 월가에 많은 졸업생을 내보내는, 기득권의 상징 같은 아이비리그를 압박함으로써 노동자와 백인이 중심인 보수 지지층의 여론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여진다. 미국 정부는 여러 대학들이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공격하고 있는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대학 내 반유대주의 척결을 주장하지만, 보수 이념을 사회 전반으로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등이 우선 타깃이 되었다. 하버드에서 30억 달러(4조1,000억원)의 보조금을 빼내 직업 학교들에 주는 것을 추진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순전히 가정이지만, 우리 대학들에 이런 압박이 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었을까. 미국 대학들의 연간 수입 중 정부 보조금은 대체로 15%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존스홉킨스대처럼 의학 연구가 강한 곳은 이 비율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버드대는 기부금이 400억 달러를 넘는 곳이기 때문에 꽤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 대학들의 기부금에도 꼬리표가 달려있어서 마음대로 사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수백억 달러 이상을 갖고 있는 곳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기부금 적립액을 다 합쳐도 하버드대의 4분의 1에 못 미친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대학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 있어야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도 상상하기 싫다. 대학의 재정과 해법, 여러 각도에서 살펴야 할 것 같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전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