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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테크 2025 현장 리포트] '실증의 경제'가 열린 비바테크 2일차, K-스타트업은 어떻게 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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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테크 2025 현장 리포트] '실증의 경제'가 열린 비바테크 2일차, K-스타트업은 어떻게 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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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비바테크놀로지(Viva Technology) 2025'의 둘째 날인 6월 12일, 파리 엑스포 전시장은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비즈니스 담론으로 채워졌다.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그래서 당신의 기술이 우리 비즈니스에 어떤 실질적 가치를 더할 수 있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현장을 지배했다.





이러한 '실증의 경제(Economy of Proof)'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들이 2일차 현장 곳곳에서 펼쳐졌다.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LVMH는 혁신 어워드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며 협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고, 글로벌 어워드에서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격전의 한가운데, K-스타트업 사절단에게는 낭보가 전해졌다. 현장에서 발표된 '2025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GSER)'에서 서울이 역대 최고 순위인 세계 8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순위 상승을 넘어, 유럽의 잠재적 파트너들에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신뢰도를 공인하는 강력한 증표가 되었다.

비바테크 2일차, '아이디어'가 아닌 '결과'로 말해야 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 속에서, '세계 8위'의 K-스타트업들은 유럽 시장의 까다로운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었는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LVMH, "아이디어는 끝났다, 협력의 결과를 보여라"


비바테크 2일차의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은 단연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였다. 올해 시상식은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기술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실용주의'를 택한 LVMH, 기술 파트너의 기준을 바꾸다. (사진=비바테크 2025 LVMH 부스>

과거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시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 LVMH는 처음으로 이미 그룹 산하 브랜드(메종)와 성공적인 협업을 진행 중인 기술 파트너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심지어 대상 격인 '올해의 혁신상'은 폐지되었다. 이는 LVMH가 더 이상 잠재력이나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비즈니스에 즉각적으로 통합되어 측정 가능한 가치를 창출한 '검증된 솔루션'을 원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LVMH의 앙투안 아르노 부회장은 "기술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격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모든 B2B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대기업의 문을 여는 열쇠는 화려한 피치덱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검증된 파일럿 프로젝트와 기존 시스템과의 깊은 통합 능력이다.

'세계 8위'의 K-스타트업, 유럽의 문제에 답을 찾다


파리 엑스포 1홀 중심부에 위치한 'K-스타트업 통합관'은 2일차에도 유럽 각지에서 온 투자자와 바이어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이곳에 참여한 26개 기업들은 기술 시연과 동시에, 유럽 시장이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막연한 비전이 아닌, 유럽이 당면한 과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현지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인와트(Ninewatt)는 AI 기반 건물 에너지 최적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EU의 강력한 '그린딜' 규제와 높은 에너지 비용 문제에 직면한 유럽 건물주들에게 데이터 기반의 명확한 에너지 절감 및 탄소 감축 솔루션을 제시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모핑아이(MORPHING I)는 AI 로보틱스 기술로 파리 등 유럽의 오랜 골칫거리인 노후 상하수도관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들의 지하관로 진단 솔루션은 도시를 파괴하지 않고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콘텐츠 시장의 빈틈을 파고든 사례도 있었다. 투니모션(Toonimotion)은 K-웹툰이라는 검증된 IP를 저비용·고효율로 영상화하는 AI 기술을 통해, 콘텐츠 수급난을 겪는 유럽 OTT 플랫폼에 리스크는 낮고 Z세대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가치를 제시했다.

의료·헬스케어 분야의 혁신도 눈에 띄었다. 포어텔 마이 헬스(Foretell My Health)는 혈액 검사만으로 난소암 등을 조기에 발견하는 혈소판 바이오마커 기술로 유럽의 선진 정밀 의학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또한, 만드로(Mandro)는 기존 고가 전자 의수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한 3D 프린팅 전자 의수를 통해, 유럽의 포용적 보건 시스템 안에서 기술의 사회적 가치와 시장성을 동시에 증명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 기업은 "우리 기술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대신 "우리가 당신들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이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비바테크 참가를 통해 현지화 및 비즈매칭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으로 지원한 '유럽 진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의 미래를 논하다 - 다양성과 현실주의의 공존


비바테크 2일차의 주요 세션과 어워드는 기술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했다.

저녁에 열린 '비바테크 글로벌 어워드'에서는 제7회 '여성 창업가 챌린지(Female Founder Challenge)'의 우승자가 발표되었다. 영예는 정밀 발효 기술로 비동물성 유단백질을 생산하는 프랑스 바이오테크 기업 벌리(Verley)의 공동창업자 엘렌 브리앙에게 돌아갔다. 최종 후보에 오른 기업들이 펨테크, 탄소 포집, AI 정신건강 솔루션 등 인류의 난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제 '임팩트'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AI에 대한 장밋빛 전망 속에서 현실적인 경고의 목소리도 나왔다. 깃허브(GitHub)의 CEO 토마스 돔케는 'AI 에이전트와 프로그래밍의 미래' 세션에서 "AI 코딩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은 확장이 어렵고 투자 유치도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잡하고 방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숙련된 인간 개발자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는 AI 시대일수록 핵심 기술 역량을 내재화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또한, 'AI 기반 신약 개발' 세션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제약업계 리더들이 AI가 어떻게 임상시험의 성공률을 극적으로 높이고(전통 방식 50-70% vs AI 방식 90%)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지를 공유하며, AI가 인류의 건강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을 제시했다.

파리의 열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비바테크 2025 2일차는 '증명'과 '실질'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LVMH 어워드가 보여주듯,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스타트업에게 구체적인 협업 성과와 ROI를 요구하고 있다. K-스타트업들은 '세계 8위'라는 객관적인 신뢰도를 바탕으로, 유럽 시장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며 이러한 흐름에 성공적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전 세계 혁신가와 투자자,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비바테크 2025' 전시장 전경>

하지만 파리의 열기는 시작일 뿐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유럽 진출 선배 창업가는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행정, 서류, 계약"이라며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비바테크에서 확보한 수많은 명함과 긍정적인 피드백을 실질적인 계약으로 전환하는 지난한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서울의 '세계 8위' 등극은 축배를 들 일이 아니라, 더 높은 기준과 기대를 안고 글로벌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출사표다. K-스타트업들이 파리에서 보여준 '증명'의 힘을 유럽 전역에서의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김이련 스타트업 기자단 1기 기자 nenufar07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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