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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 차단하면 무조건 위헌? 헌재 판단은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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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 차단하면 무조건 위헌? 헌재 판단은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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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가족모임이 4월27일 0시20분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평화랜드 펜스 뒤편에서 대북전단이 담긴 풍선을 날려 보내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납북자가족모임이 4월27일 0시20분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평화랜드 펜스 뒤편에서 대북전단이 담긴 풍선을 날려 보내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접경지역 주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대책 마련을 정부에 지시했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항공안전법(기구 외부에 2kg 이상 물건 매달고 비행) △재난안전법(2024년 10월 경기 파주·김포·연천 지역 11곳 위험구역 설정) △고압가스안전관리법(미등록 헬륨 가스 운반) 등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를 차단할 수 있는지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대북전단이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효과적 공격 수단이라고 보는 보수진영은 반발한다. 국민의힘은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으나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며 이 대통령의 지시를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항공안전법 등 “다른 법으로 처벌하는 것 역시 명백하게 헌재 해석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정부가 어떤 법적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대북 전단을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며 편법에 불과하다”고 했다.



파주지역 시민단체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이 4월2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납북자가족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파주지역 시민단체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이 4월2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납북자가족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접경지역 주민들은 ‘삐라를 뿌리면 포탄으로 돌아온다’며 군사 충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 대북전단 살포는 특정 개인의 표현의 자유 차원을 넘어 접경지역 주민 전체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 개정돼 이듬해 3월 시행에 들어간 남북관계발전법은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그 예로 ‘전단 등 살포’를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미수범이라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이 시행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21년 4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수십만장의 전단을 담은 대형풍선 10개를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북한은 군사분계선(MDL) 인근 군부대의 고사포 등 장비를 평소보다 남쪽으로 전진 배치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박 대표는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2023년 9월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헌재 위헌 판단 이후 국민의힘·조선일보처럼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무조건 허용된다’는 식으로 뭉뚱그린 주장이 반복해서 제기된다. 사실이 아니다. 당시 위헌 쪽에 선 재판관 7명 끼리도 4 대 3으로 의견이 갈리는 등 일도양단식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위헌 결정은 ‘다른 법령 등을 통해 살포를 막을 수 있는데도 처벌까지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판관 9명 전원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 안전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는 데 동의했다. 또 재판관 9명 중 절반이 넘는 5명은 ‘대북전단 살포는 국민 생명·신체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에도 동의했다.



특히 가장 강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남북관계발전법으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경찰관 직무집행법(생명·신체·재산 보호)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현장에서 제지할 수 있고 △집시법의 옥외집회·시위 신고 방식을 도입해 전단 살포자에게 사전 신고 및 해산 명령을 규정할 수 있으며 △공유수면법·항공안전법 등을 통해 살포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다는 ‘우회 차단 방안’을 직접 제시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지시와 이후 거론되는 대북전단 차단 방안 역시 헌재 결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헌재 위헌 결정을 두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나치게 가볍게 판단했다는 비판이 있다. 심야에 기습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에 우회 차단 방안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당시 대북전단 살포 금지·처벌 합헌 의견을 냈던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현실적으로 접경지역 주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실제 (북한에 의한) 가해 행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가형벌권 행사는 최후 수단으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위험을 방지하면서도 덜 침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전단 살포 금지·처벌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본 입법자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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