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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못질한 드라마... 국가유산청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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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못질한 드라마... 국가유산청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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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부에 호우 경보...곳곳에 침수 피해 잇따라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 촬영 당시 문화유산 훼손 논란
KBS 해명에도 들끓는 여론… 부정적 이미지 어쩌나
PD부터 배우들까지 제작발표회서 고개 숙이고 사과


드라마 소품 설치로 훼손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민서홍 건축가 SNS 캡처

드라마 소품 설치로 훼손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민서홍 건축가 SNS 캡처


"기분 좋은 드라마가 되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의 주연을 맡은 서현의 각오다. 그러나 촬영 중 제작진이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해 작품을 향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KBS2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이하 '남주의 첫날밤')는 문화유산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건축가 민서홍은 지난해 12월 30일 병산서원을 방문했다며 서원 내부에서 '남주의 첫날밤' 스태프들이 등을 달기 위해 나무 기둥에 못을 박고 있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에 KBS 측은 해당 상황을 파악, 병산서원 관계자들과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했다. KBS에 따르면 드라마 스태프들은 기존에 나 있던 못 자국에 소품을 매달기 위해 새로 못을 넣어 고정하며 압력을 가했다.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보머리 8곳과 동재 보머리 2곳 등 총 10여 곳이 훼손됐으며 완전한 복원은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특히 KBS는 대중의 비판이 짙어지자 KBS는 앞으로 재발 방지 대책과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올해 2월 안동경찰서는 병산서원을 훼손한 KBS 드라마 소품팀 관계자 3명을 문화유산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드라마에 대한 이미지 타격도 이어졌다. 첫 방송 당일에 개최된 제작발표회에서도 해당 논란이 가장 먼저 화두로 올랐다. 연출을 맡은 이웅희 감독의 입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저희가 잘못한 것이 맞고 관련 촬영분은 전부 폐기했다. 현장에서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고를 알아달라"로 요약할 수 있다.

KBS에서도 기존 가이드라인 재정비를 마련했다. 다만 현재까지 국가 유산청, 경찰 등 아직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선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년간 추적 관찰을 해야 한다. 현재 복구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 KBS의 현 입장이다.


늦장 대처에 대한 지적에 대해선 이 감독은 "사건 발생 후 드라마, 회사 차원에서 직접 안동으로 내려가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컨디션을 확인했다. 초반 사실관계를 파악함에 있어서 조금씩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교차로 확인, 오해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에 신중한 판단을 내리고자 (대응이) 늦어졌다"라고 해명했다.

사건 발발 후 6개월 가량 지났으나 KBS 입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KBS는 본지에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했으며 전문가들의 말대로 1년간 추적 관찰을 기다리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에 죄 없는 배우들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통상적으로 첫 방송을 앞두고 기쁜 마음을 전하는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주연인 옥택연과 서현은 나란히 사과를 전했다. 먼저 옥택연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배우들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런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현은 "주연 배우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진심으로 드리고 싶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는 다시는 어떤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로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국가유산청의 지침 발표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지정문화유산 촬영 허가 표준 지침'을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지침에 따르면 기존의 허가신청서 외에도 상세한 촬영 행위 계획서와 서약서를 관할 지자체에 제출해 허가 신청자가 사전에 촬영 행위를 점검하도록 했다. 상업적 촬영이거나 촬영 인원이 10인 이상인 경우 문화유산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감독을 전담하는 안전 요원을 필수적으로 배치한다.

중점 촬영 시간에는 소유자, 관리자 또는 관리단체가 입회토록 하고, 촬영 종료 후 소유자, 관리자 또는 관리단체가 현장 확인을 하도록 했으며, 해당 지침 외에도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별도지침이 있는 경우는 이를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촬영 지침 전문은 국가유산청 누리집에 공개되어 있으며, 소책자형 파일도 이달 중 국가유산청 누리집 내 행정자료간행물 란에 게재될 예정이다. 또한 국가유산청은 이를 지자체에도 배포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지만 지금이라도 지침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